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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Aug 10. 2023

문자로 통보하는 이별, 괜찮으신가요?

- 글자 뒤에 숨긴 마음, 이젠 나도 사양이야

 000님이 나갔습니다.

친구가 단톡 방을 나갔다. ‘나는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문장을 남기고.    

  

 대학 때부터 30년 넘는 인연을 맺어온 친구였다. 갈등은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눴고 조금은 마음이 풀어졌나 보다 생각하던 상황이었다. 단체 방을 나간 거지만 나를 향한 절연 통보임은 확실해 보였다. 다른 친구를 통해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한 순간, 언급을 피하며 살았다. 타인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그 친구 이름 석 자는 금기어였다. 내 인생에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면하며 살았다.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속상하거나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다만, 내게 드는 다양한 감정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일방적인 절연, 내 상식으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 전개, 헤어짐의 방식 이 모든 걸 이해하기에는 우리가 맺어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 길었던 인연이 모두 하찮아진 상황을 그저 묻어버리고만 싶었다. 

    

 비슷한 일을 한 번 더 겪었다. 꽤 오랫동안 시간을 공유한 사람이었다.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여겼고 둘이어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남은 날들도 그럴 줄만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빛이 바래고 말았다. 

회복하고자 전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상처만 주는 날들이 계속됐다. 끝은 예감했지만 아직 결론 나지 않았다 여기던 어느 날,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요약하자면 그동안 고마웠다,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고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이별편지의 정석 같은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덤덤했다. 친구의 ‘안녕’ 인사보다 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오고야 말 이별이라는 걸 짐작했으니까. 함께 엮어온 시간, 쌓인 마음이 견고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심장이 버석거렸다. 왜 소중했던 사람들은 나를 이런 방식으로 떠나는 걸까.     

 

 나는 얼굴 보고 이별할 가치도 없는 사람인가. 그렇게 잘못이 많았나. 나와 보냈던 시간이 문자 몇 줄로 치환될 만큼 하찮았던 건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걸까. 의도한 바 없지만 습관적으로 날 서있는 나의 말이 너무 아파 문자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나.   

   

 화를 내야 할지, 아파해야 할지, 반성해야 할지 구분할 수 없던 나는 이번에도 돌아보지 않고 마음을 묻었다. 나의 인간관계에서 둘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여기기로 했다.     


 그때부터였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최대치로 늘리려 노력했다. 논쟁이 될 주제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굳이 내 생각을 강조하지 않았다. 함께 선택해야 할 일은 객관적 자료에 의존하거나 다수의 의견에 따랐다. 황희 정승이라도 된 듯 ‘너도 맞고, 당신도 옳아.’라며 중용을 지키려 애썼다.      


 묻었다 했지만 묻어지지 않았던 거다.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말했던 순간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로 인한 흉터가 깊게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던 말, 고작 몇 문장에 그쳤던 이별통보의 이유인 것만 같았다. 문자 뒤에 감춰진 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내 멋대로 해석하며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들만큼 상처받지 않았으니 나의 잘못이 더 크다는 준엄한 심판을 스스로에게 내리고 방어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대학 선배 언니가 당진 집에 묵었던 적이 있다. 몇 년 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혹시 요즘 친구들하고 불편하니?” 묻는 것이다. 이 양반이 친구와의 일을 알고 이러나. 그렇다 해도 4년 전 일이니 ‘요즘’ 일 수도 없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질문일까?     


 언니에게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했더니 역시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참에 돗자리 깝시다.” “그 정도로 말이 순해졌어요?” 가볍게 답했지만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었어.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었지. 지금은 가정과 추측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네. 특히 친구들이 어떤 감정일지 무척 신경 쓰고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져.” 

어지러워진 나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언니는 설명을 보탰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해주었다.      


 “알 수 없는 그들의 마음 말고 네 마음에 집중해. 인생 얼마나 길다고 불편한 관계 되새기며 살아? 난 해마다 안 보고 사는 사람이 하나씩 늘어나. 그래도 괜찮아. 편한 사람들만 보고 살아도 짧은 게 인생이야.”     


 그렇다. 30년 지기 친구가 단톡 방을 나오는 것으로, 그 사람이 메일로 10여 년의 인연을 끊은 이유를 나는 모른다. 이제와 생각하니 알 필요도 없다. 문자는 때로 지독히 일방적인 의사전달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별을 알리는 문자 뒤에 감춰진 마음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마음이 정말 궁금했다면 그들에게 물었어야 했다. 혼자 추측하고 심판해서 스스로를 억누르며 해결할 게 아니라.     


 내가 알아야 했던 건 그런 방식으로 헤어짐을 통보받은 나의 마음이었다. 예상 못한 일이라 당황했고 진심을 전달할 수 없어 답답했던 심정, 예감했지만 진짜 와버린 이별의 순간을 혼자 맞이한 외로움과 허전함을 돌아보아야 했다. 확인할 길 없는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느라 정작 살폈어야 할 나의 감정은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돌아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각자가 달라서, 때로는 어설퍼서 서로를 아프게 한 적도 있지만 노력하고 살피며 쌓아온 순간들이 곳곳에 배어있는 시간이다. 그런 인연의 마무리가 무심하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점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그렇지만 이제 누구의 탓이라 여기지 않는다. 보낸 시간이 덧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다 좋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나이니까. 선배 말대로 할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에 정성을 기울이기만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감춰져 있어 알기 힘든 마음? 이젠 나도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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