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력이 우수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수했다. 비록 몇몇 영역에 특화돼 있고 갱년기와 함께 대부분 퇴화했지만, 나를 오래 알아온 친구들은 모두 인정한다. 꽤 쓸 만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음을.
첫째, 암기를 잘했다. 나름의 질서를 세워 외우는 게 재미있었고, 그러다 보면 적지 않은 분량도 어렵지 않게 암기할 수 있었다. 덕분에 화학이나 생물은 대부분 만점을 받았다. (오래전 일이라 증거는 없다.) 화학기호와 생물학적 용어만 외우면 웬만한 건 다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둘째, 노래를 잘 기억했다. 노래방에서 꽤 유용했던 능력으로 흘러간 옛 노래든, 신곡이든 막힘없이 마이크를 들어 옛 직장에서 ‘가사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선배들은 X세대(당시 신세대) 노래가 궁금하면 내게 노래를 청하곤 했다. (역시 오래전 일이라 증인은 없다.)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일상을 기억하는 능력. 언제, 어디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신기하게도 늘 생생히 떠올랐다.
“학교 앞 00 카페에서 △△, □□와 있을 때 네가 이렇게 말했어. 그때 △△는 이렇게 답했지.”
몇 년 전 상황을 어제 일인 듯 복기하면 친구들은 할 말을 잃었고, 과거 일로 다툼이 생기면 나를 찾아 누구 말이 맞는지 시시비비를 가리곤 했다. 50대가 되니 어제 일도 기억 못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젊은 날, 생생한 기억력은 주로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작용했다. 못마땅한 기억은 뭘 또 그리 또렷이 뇌리에 남는지. ‘실수’와 ‘오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나는 그것들로 똘똘 뭉쳐진 존재인 것 같았다.
인생을 너무 부정적으로 산 게 아니냐고? 천만에, 매섭고 엄격한 잣대는 오로지 나에게만 들이댔다. 돌이켜보니 반백년 넘게 살면서 억울하거나 상처받은 일,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화나거나 배신감에 잠 못 들던 밤도 적지 않았다. 날 서고 서툰 태도로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도 다수였다. 그럼에도 마음에 맺혀 응어리로 남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늘 못마땅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존재는 오직 자신 뿐이었다.
그런 나를, 나의 시간을 7개월 동안 들여다보았다. 안으로는 용기가, 밖으로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한 번으로 끝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주저 없이 스스로에게 애썼다,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도 나의 도전은 성공한 셈이다.
글쓰기를 결심하게 된 것은 하나의 이유로만 설명할 수 없는 번민으로 침잠하고 있는 나를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일어나고 싶었지만 힘주지 못했고 내미는 손도 섣불리 잡지 못한 채 주저하던 때, ‘쓰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어나 처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살펴보려 결심한 순간, 목차 정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적지 않은 날들, 언제, 무엇을, 어떤 생각을 걸러 담아야 할까?
기록보다 평가 일색인 일기는 들여다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때 갱년기 노화로 퇴색했지만 꽤 쓸 만했던 기억력이 한몫했다. 처음에는 흐릿했던 일들이 갈무리할수록 어제인 듯 또렷이 떠올랐다. 열심히 기억을 되짚는 동안 ‘오롯이 나만 가장 의미 있을 자취들인데 조금 더 소중히 담아둘 걸’ 후회도 살짝 했다.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소망하던 과거의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변화이다.
첫 글을 쓰던 때가 떠오른다. 손에 쥔 게 하나도 없는데 무조건 한 편의 글을 써야 했던 날의 아득함. 어떤 주제로,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순간, 붙잡을 건 촉박한 마감에 맞춰 ‘나중에 고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썼던 목차뿐이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둥둥 떠다니던 생각 몇 조각에 불과하다 여겼던 목차 한 줄은 글을 써 내려가는 뼈대와 곁가지를 뻗게 하는 지지대가 되었다. 결론도 나지 않을 상념을 왜 미련하게 놓지 못할까 늘 한심했는데 역시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법. 포기하지 않은 생각엔 힘이 있었다. 그 힘이 사는 동안 나를 지탱해 준 원동력이라는 소중한 깨달음도 얻은 시간이다.
원고가 쌓여갈수록 내가 나를 점점 더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글로 쓰여질 ‘나’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스스로를 살펴봤다고나 할까. 나의 성격과 태도, 경험, 익숙하다 느꼈던 모든 순간이 글을 쓰는 동안 새롭게 다듬어졌고, 달리 해석되거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크게 다가온 건 큰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나였다. 그 짐을 얹은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매 순간의 글쓰기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짐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나만의 이유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끝나고 찾게 될 정답보다는 어디를 어떻게 가게 될까 더 궁금해지는 여정.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나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글을 쓰는 초반에는 짐이 무엇인지, 크기가 어떤지, 과연 버릴 수 있는지에 방점을 찍었지만 점차 ‘짐을 지고 있는 나’로 이동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짐이 무엇이면 어떤가, 이유가 있어 들고 있을 텐데. 그보다는 짊어질 만한 힘이 내게 있는지를 살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지난 7개월은 조금씩 짐을 내려놓거나 등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짐이라면 받아들이는 여유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짐을 내려놓고 몸 가볍게 빨리 걷는 길도 좋지만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쉬엄쉬엄 가면 되니까.
나는 나를 좋아할 권리도 있다.
그 권리를 마음껏 행사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내게 얽매이느라 소모했던 에너지를 조금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내가 좋은 사람들의 격려로 힘을 얻었듯 나 역시 누군가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막연한 꿈을 구체적으로 꾸기 위해서라도 나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서둘지 않기. 더디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