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어느덧 57세(그나마 현 정부가 한 살을 깎아 주었다), 내일 모래 환갑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흰머리, 앉았다 일어서면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릎, 지방이 잔뜩 쌓인 혈관의 소유자임에도 스스로 생물학적 현주소를 깨닫는 경우는 드물다. 30년 넘게 변치 않는 ‘싱글 직장인’이라는 신분 때문일까. 교사는 나이나 경력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지지 않아서 더욱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내 시겟바늘의 위치는 주로 지인들의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친구들의 자녀 결혼 소식은 어느덧 손주 근황으로 달라지고 부모님 부고와 함께 본인 부고 소식도 늘어나고 있다. 선배들의 퇴직 소식이 줄을 잇더니 올해에는 동갑 친구가 명예 퇴직했다. 같은 학교 근무 중인 동년배 교사도 내년에는 학교를 떠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심란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대부분 일반 직장의 정년은 55세였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50대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일몰 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니 남은 인생을 논하거나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위에 일터를 떠나거나 노후 대비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늘어나면서 불쑥불쑥 불안함이 밀려온다.
나는 은퇴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돈만 있어봐라. 당장 때려치우지.’ 호기롭게 외쳐보지만 연휴는 말할 것도 없고 토요일을 지나 일요일만 돼도 쉬고 있는 마음이 편치 않다. 휴식의 질은 또 어떤가. 허리가 아파도 배가 고파도 침대에 딱 붙어 있는 날이 대부분, 간단한 산책이라도 했다면 성공한 쉼이다.
뿐인가,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 없는 나. 해야 할 과제가 사라져 버린 매일이 예상되지 않는다. 미혼인 삶, 연로한 부모님마저 없다면 오롯이 혼자 맞이해야 할 시간들이 아닌가.
‘싱글 은퇴자 가을투덜이’의 전망 보고서는 밝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행복한 은퇴생활을 위해 적당한 재산, 건강, 취미, 인간관계, 종교, 반려동물 기르기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요소들이 많이 갖춰져 있을수록 노후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의견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이제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고?
딱히 마음이 당기지않는다는 게 문제다. 나는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 필요한 일을 하며 살아왔다. 좋아하는 게 뭘까 열심히 떠올려도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사회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더 중요했던 세상에서‘나 따위’는 묻고 살았다. 개성이 대접받는 시대로 바뀌며 뒤늦게 호불호를 찾느라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남들은 잘도 좋아하는 걸 찾는데 제자리걸음만 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결국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좋은 사람’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엉덩이 무겁게 살고 있는 탓에 취미 생활도 읽기, 듣기, 보기 등 혼자 놀기 좋은 것들뿐이고 인간관계 역시 소박하니 은퇴생활에 보탬이 될 것 같지 않다. 종교생활도 어색하고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은 생각도 딱히 없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접해보지 않은 취미를 찾고, 낯선 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마음에 닿아서가 아니라 은퇴 준비라는 숙제 같은 기분으로 실천한다면 성과가 있을까. 설령 새로운 취미를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퇴직을 했거나 앞둔 사람들에게 습관처럼 묻는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고, 일터를 떠나 어떻게 살 거냐고. 퇴직한 선배들의 삶을 시간대별로 점검하기 바쁘다.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살아본 적 없으니 준비 없이 은퇴를 맞이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남들이 말하는 필수요소는 끌리지 않는다. 그 사이 은퇴시계는 점차 큰 소리로 째깍거리니 초조함이 더해진다. 그래서 정답을 찾듯 다른 이들의 삶을 캐묻게 되나 보다.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시청한 적이 있다. 내 나이쯤 됐을까. 한 참가자가 물었다.
“반년만 있으면 퇴직입니다. 30년간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나 이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톨이가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불안해집니다. 가족들이 무시할까 걱정도 됩니다. 행복한 은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복에 겨운 줄 모르고 걱정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몇십 년 동안 조직에 몸담았던 소속감이 없어지는 불안한 마음을 알아주리라 기대했는데 그의 걱정은 단칼에 배부른 투정이 되었다.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성과에 시달리고,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 마음 졸이던 순간들이 다 사라졌는데 왜 즐길 생각을 못 하냐는 것이다. 스님은 ‘사서 걱정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말까지 곁들였다.
정신이 번쩍 났다. 나 들으라고 한 말 같았다. 어쩌면 은퇴 후에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서 불안한 게 아닐까. 해야만 하는 일,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익숙한 나는 그 필요함이 사라지는 순간 나의 가치 역시 사라지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 은퇴자 가을투덜이’의 전망 보고서 첫 줄을 다시 써 본다. 퇴직 준비에 방점을 찍지 말고 내 마음의 주인이 나인지 돌아볼 것. 필요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니 나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볼 것. 남들이 말하는 그렇고 그런 계획에 목매달지 말 것.
무엇보다 지금 내가 행복한지 항상 살펴볼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나의 발을 굳건히 땅에 딛기. 이것이 나의 은퇴 준비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