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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힘을 모아 만든 나의 완벽한 회복

뇌경색 환자의 혈전용해제 치료

by 허간호사

갑자기 한쪽팔과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놀란 가족들이 119에 신고를 합니다. 빠르게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뇌졸중 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뇌졸중 중재가 가능한 병원 중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합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응급실간호사가 나한테 팔을 들어봐라 다리를 들어봐라 이것저것 시킵니다. 그리곤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오셨고 여러 가지를 묻고 확인해 보더니 곧바로 검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CT며 MRI를 찍고 난 후에 신경과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또 이것저것 잔뜩 물어보고는 발생시간이 얼마 안 되어 혈전용해제를 쓸 수 있다고 주의사항을 말하며 사인을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혈전용해제를 맞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환자는 뇌경색이 왔지만 후유장애 하나 없이 멀쩡하게 퇴원합니다.




어쩌다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기적 같은 이야기로 들리시나요? 흔하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리실 수 있겠지만 이런 환자들은 일주일에 몇 명이나 만날 만큼 흔하다면 흔한 일입니다.

흔한 일이지만 이런 흔한 일을 만들기 위해선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합니다.




번째 우주의 힘: 나

"뇌경색 증상을 바로 느낄 수 있도록 깨어있는 시간에 증상을 생기게 해 준 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잠자는 시간에 뇌경색이 오면 자고 일어나서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고 맙니다. 병원에서는 마지막으로 정상인 시간을 기준으로 치료시기를 정합니다. 자고 있는 동안 뇌경색이 발병한 경우에는 잠자리에 들었던 시간이 10시라고 한다면 10시를 기준으로 골든타임을 셉니다. 아침에 일어나 증상을 알아채버렸다면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혈전용해제 사용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는 동안 뇌경색이 온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 뇌경색이 올지 모르니 안 자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는 동안 뇌경색이 와 버리면 대처도 못하고 골든타임도 놓치고 마는데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옆에 배우자라도 있으면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서 발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기에 깨어 있을 때 뇌경색이 온 건 행운입니다.


아무 탈 없이 잘 자고 일어나게 해 준 나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



번째 우주의 힘: 가족

"가족들이 옆에 있다거나 발견을 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혈전용해제를 쓸 수 있는 상황은 작은 뇌경색 상황이 아닙니다. 어쩌면 평생 누워 지내거나 마비된 몸으로 살아야 할 수 있는 분들을 마법처럼 회복되게 해주는 치료제입니다. 이런 분들은 증상이 발생하고 스스로 이상을 감지하여 119에 신고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핸드폰을 찾으러 가는 것이 어렵기도 합니다만 전화번호를 누르고 신고하기 위해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안 나오거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실제로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 같은 경우에는 혼자 쓰러져있다가 뒤늦게 발견되어 안타까운 일이 발생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딸이 아침 일찍 노모에게 안부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했을 때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갑자기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방 엄마집에 갔는데, 가보니 엄마가 쓰러져 있었던 것이죠. 급하게 응급실에 모시고 오셔서 호전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만약 아침에 안부전화를 하지 않고 바로 방문한 거였다면 마지막 정상시간이 모호하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못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환자분이 의식이 있어 '아침 몇 시까지는 멀쩡했어요'라고 말해주지 않는 한 마지막으로 정상이었던 모습을 기억하는 주위 사람의 말을 기준으로 시간을 세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안부전화만 하고 방문을 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상황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옆에 있는 든든한 가족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



번째 우주의 힘: 119

"나의 슈퍼맨! 119 구급대원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 환자를 치료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환자가 내 눈앞에 와야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 멀리서 울리는 '도와줘요~'소리만으로도 눈 깜짝할 새 환자 앞으로 날아와 척척척 고쳐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119 구급대원이라는 현실판 슈퍼맨이 있습니다. 119 구급대원은 전화 한 번에 즉시 달려와 도착하자마자 단번에 뇌졸중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주고 시간이 금이라는 걸 알아 일사불란하게 이송해 주는 현실판 슈퍼맨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뇌졸중 중재가 가능한 신경과 의사가 있는, 검사장비, 치료장비가 있는 그러면서도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아주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119에 신고하지 않고 보호자가 환자를 모시고 바로 응급실에 간 경우가 있었습니다. 보호자가 생각하기에는 응급실도 있고 병실도 많으니 나름 큰 병원이라고 생각해서 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뇌졸중 환자를 치료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병원이었는지 더 큰 병원으로 옮겨 가라고 조언을 해주더랍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환자의 골든타임은 놓쳐버리고 맙니다. 병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 많은 구급대원의 우주의 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늘도 불철주야 애써주시는 119 구급대원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



네 번째 우주의 힘: 응급실 staff

"나의 중증도를 알아봐 주고 열일 마다하고 나를 위해 애써준 응급실 간호사,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한눈에 뇌졸중임을 인지하고 바로 검사를 진행할 수 있게 준비해 주고 신경과의사를 호출하는 것은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엄청난 일입니다.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응급실 환자 가운데 빠르게 중증도를 나누는 일은 중요한 일이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증도 심한 환자들도 복도에 방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상급병원의 답답한 현실입니다.


그런 정신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골든타임 내 치료를 진행해 주기 위해 응급실 staff들은 손과 발에 모터를 장착합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분주한 응급실은 더 분주해집니다. 응급실만 가면 나를 위해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척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당직실에서 응급실의 호출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응급실에서는 치러야 하는 수순들이 빨리 진행되어야 합니다. 응급실에서는 뇌 CT나 MRI를 찍어 뇌경색 병변을 확인한 다음에야 신경과 의사에게 호출을 할 수 있습니다. 응급실 간호사,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호흡을 맞추는 것은 빠르게 신경과 의사 선생님에게 연결시켜주기 위한 노력입니다.


나의 치료시간을 앞 당겨주기 위해 노력해 준 응급실 의료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



다섯 번째 우주의 힘: 중환자실 간호사

"혈전용해제는 강력하지만 뇌출혈의 위험성이 높습니다. 밤새 나를 지켜준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혈전용해제의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뇌출혈입니다.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약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출혈에 대한 부분을 빠트리지 않습니다. 저는 신경과 간호사로 근무하는 10년 동안 혈전용해제 사용 후 뇌출혈이 온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병원에서 겁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5~10%가량 뇌출혈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아무 문제 없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나와 퇴원수순을 밟는 환자만 만났기에 그런 안 좋은 케이스는 만나지 못했었나 봅니다.


혈전용해제를 투여하면 반드시 중환자실에서 하루 동안 집중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뇌출혈을 예방하기 위해선 집중적인 혈압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완벽에 가깝게 회복된 환자는 사경을 헤매는 다른 환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화장실도 침대 위에서 해결해야 하고 밤낮이 없어 잠을 자는 것도 불편하기에 중환자실에서 빨리 나가고만 싶으실 겁니다. 그래도 하루만 참아주세요. 쉴 틈 없이 혈압을 측정하는 중환자실 간호사 덕에 여러분은 아무 일 없이 일상생활을 하시게 될 겁니다.


나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24시간을 지켜준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감사인사를 전해 주세요.





뇌경색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얼마나 적은 양의 뇌세포가 손실을 입었는지,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뇌세포를 얼마나 빨리 많이 살릴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시간의 문제입니다. 혈액이 통하지 않아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는 뇌세포한테 잠깐만 버텨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경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빠른 판단과 처치가 있었기에 완벽한 기적 같은 회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주의 힘을 모아주신 분이 많았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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