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여행 2]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요즘에는 아침마다 여러 나라의 진한 원두커피 향기를 번갈아 음미하면서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곤 한다. 그때마다 식탁 유리 아래의 테이블보가 눈에 들어오며 지나간 여행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오래전 발칸 반도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서 어느 시골 아낙네에게서 산 ‘기념품’이다. 정교한 장식을 가해서 손으로 짠 하얀 레이스 식탁보는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분위기가 물씬해 그때 본 여인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나이 지긋한 축구팬이라면 한때 축구 강국으로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기억할 것이다. 냉전 시절에도 이 나라는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제3세계 맹주를 자처하던 강국이었다. 지금은 서로 원수 사이가 됐지만, 연방 산하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등은 오래전 남슬라브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 민족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11세기에 기독교가 비잔틴 제국의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으로 분열하면서 이 민족들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교회 분열의 경계선이 발칸을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동쪽의 세르비아는 정교회로, 서쪽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가톨릭으로 갈라졌다. 그 경계에 있던 보스니아는 어정쩡한 보스니아 교회로 자리 잡았고 이 때문에 양쪽에서 모두 이단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15세기에 오스만이 발칸 지역을 점령하자 아예 이슬람으로 개종해버렸다. 그렇지만 이곳 사람들은 유고슬라비아라는 우산 아래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그런데 1992년 각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연방은 해체되고 온 국토는 내전에 휩싸였다. 유독 가난하고 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내전에서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종교가 민족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땅을 다녀보면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에게도 이 비극의 아픔이 생생히 전해진다.
수도 사라예보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가는 길목에 모스타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네레트바 강을 경계로 동쪽에는 무슬림 보스니아인이, 서쪽에는 가톨릭 크로아티아인이 살고 있었다. 이 두 구역을 잇는 다리가 바로 스타리 모스트(올드 브리지)다. 1557년 오스만 술탄 슐레이만 대제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한때 발칸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다리로 꼽혔던 곳이다. 수백 년을 벼텨오던 이 다리는 1993년 크로아니티-보스니아 내전 중에 폭파되어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파괴와 무차별 학살이 이어졌다. 이 돌다리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와 평화로운 공존의 상징도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다리는 파괴된 후 유고 내전의 비극을 잘 표현하는 상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합심하여 이 소중한 문화유산의 복원에 나섰다. 다이버들이 강 속에 가라앉은 돌조각을 하나하나 건져냈고, 건축가들은 오스만 시절의 양식대로 다리를 세심하게 복원했다. 새 다리는 2004년 7월 과거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아픔의 기억을 보존하는 의미에서 이듬해 유네스코는 이 다리와 인근 구시가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많은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지금은 관광지화한 이 다리를 배경으로 SNS용 사진을 찍곤 했다. 나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모스타르가 잃어버린 전통과 최근의 비극을 곱씹어보았다. 모스타르에는 올드 브리지 외에도 오스만 시절의 여러 다리와 고풍스러운 주택이 산재해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내전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듯 건물 외벽 여기저기에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일부 건물은 아직도 폐허 상태로 있다.
당시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리 밑을 흐르는 맑고 푸른 네레트바 강물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다리 초입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관광객용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보스니아 전통의 레이스 류를 파는 사람도 있었다. 한 아낙네가 테이블보를 건네면서 사라는 몸짓을 했다. 이 여인의 얼굴은 검게 그을고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으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원래 여행 중 쇼핑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왠지 하나 사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테이블보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마침내 우리 집 식탁에 자리 잡았다. 지금도 이 천조각을 볼 때마다 모스타르에서 만난 그 아낙네가 떠오르고, 보스니아라는 이름에 왠지 가슴이 짠해진다.
<부대신문> 2021. 11. 3. 게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