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좋은 이웃이 될 준비가 충분하다
오랜만에 이웃이라 부르기가 꼭 어울리는 친구들과 가족 모임을 했다. 병원에 있는 아내, 해외에서 공무 중인 친구, 사춘기 예비 고등학생인 친구의 아들, 그리고 이틀 전에 미리 회포를 푼 미얀마 주재원 친구의 부재로 완전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대가족이 모였다. 우리는 미얀마에서 만난 네 가정의 주재원 가족들로, 아빠들과 엄마들, 아이들까지 깊게 연을 맺은 후, 예전 시골 마을의 이웃들처럼 아이들을 같이 키우고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스며들어 이웃이 되었다.
미얀마 한인 사회가 좁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모두가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집단이기에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더 많았고, 또 언제든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인연을 이유로 서로에게 함부로 하는 일도 종종 있곤 했다. 삶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며, 우리 네 가족도 치열하게 사랑과 신뢰라는 우리의 울타리를 단단히 쌓았기에 지금 이런 애틋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시계를 과거로 돌리면, 나는 경기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 마을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신규 입주한 택지 분양 지역으로 당시만 해도 그 지역 신도시에 해당했고, 부모님이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나는 태어나자마자 우리 부모님의 자가인 새집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40년보다 더 많은 세월을 건너 여든이 넘은 아버지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고, 그 동네 이웃들도 아버지와 같이 좀처럼 마을을 떠나지 않으셨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마을은 비포장도로였다. 지금은 틈 없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마을의 빈 땅 모든 곳을, 구슬치기용 구멍을 파기 위해 동네 형들을 부지런히도 쫓아다녔기에, 비포장 그 골목들을 잊을 수가 없다.
마을 중앙 공터 한켠에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간혹 변죽 좋은 아저씨가 어울려 동네 온갖 일을 참견하는 장이 열리는 평상이 있었고, 우리 어머니도 그 평상의 단골 손님이셨다. 평상의 위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고, 나만 보면 어제는 오줌을 안 쌌냐며 목청껏 놀려대던 호랑이 아줌마가 늘 거기에 있었기에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랑곳없이, 내가 갓난아기 때 어머니가 큰 수술을 해서 서울 큰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호랑이 아줌마가 나를 오랫동안 돌봐줬다며 항상 고마워하라고 하셨다.
이웃 마을 우시장에서 도축 일을 하는 최 씨 아저씨는 간혹 시장에서 남은 고기들을 챙겨오곤 했는데, 그날은 동네 잔칫날이 되곤 했다. 동네 중앙 공터에서 고기를 굽고 국을 끓이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면 모든 이웃들이 몰려들었고, 우리 형제를 포함해 동네 아이들도 부위가 어딘지도 모르는 고기를 신나서 먹곤 했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이웃이라 부를 수 있었고, 마치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가족인 것처럼 시끌벅적하게 살았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옆 마을도 그랬고 건너 마을도 그랬고, 모두가 서로를 애틋하게 대했던 것 같다. 마을을 떠나 도시에 살게 되면서 이웃을 가져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현관문을 맞대고 살면서도 이름조차 모르는 게 당연한 듯 살아오다가, 먼 이역만리에서 이웃을 다시 만나니 예전 따뜻했던 이웃의 온기가 기억나 좋았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이들이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를 애정했던 이유는 우리 DNA에서 기억하는 '이웃'이라는 주제를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보다 기회가 적어져서 그렇지, 우리는 이미 좋은 이웃이 될 준비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웃을 사촌보다 가까이서 아끼며 어울려 지내는 부모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작가 박웅현은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살면서 꼭 생각해야 하는 것 여덟 개 중 하나를 '보는 것', 즉 관찰로 꼽았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사물, 현상뿐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도 이 관찰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 네 가족은 서로를 정말 알고 싶고,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 서로를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했기 때문에 이웃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이 이웃과 별것 아닌 재료들로 마을 중앙 공터에서 밤새 축제를 벌인 것처럼, 나도 나의 이웃들과 거창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 이야기들로 어제 하루를 풍요롭게 꽉 채웠다. 항상 그들이 고맙고 돌아서니 또 그립다.
더불어 여름철 장마처럼 한때를 울창하게 살던 그 시절 우리 부모님과 그때 동네 이웃들이 가끔은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