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게 그려진 계획은 현실의 한계를 우습게 만든다
오랜만에 공항에 왔는데 생각보다 한산하다. 오늘 반년 만에 미얀마를 가기 위해 공항에 온 것이다. 꽤 많이 양곤 공항을 다녔어도, 일이 아닌 온전한 여행으로는 또 처음이다. 미지의 나라 미얀마를 처음 가던 때는 정말 세상 끝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같은 시기에 복귀한 전 주재원 형과 둘이, 현 주재원 친구를 보러 가는 오늘은, 발걸음이 많이 가볍다.
몇몇 동료들은 휴가에 미얀마를 왜 가는지 물었다. 사실 그 질문에는 '굳이 아까운 휴가에 왜 미얀마를 가는가?'라는 숨겨진 뉘앙스가 있는 것을 잘 안다. 굉장히 있을 법한 질문이고 또 이해가 간다. 일반적으로 미얀마라는 나라가 휴가로 가기에는 매력적이지 않은 곳임을 나도 인정하기 때문에, 질문이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더 좋은 질문을 했으면 내가 깊이 있는 답변을 해줬을 텐데, 그저 비자 기간이 남아서라는 어찌 보면 상투적인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은 다소 아쉽다.
나는 사실 오직 친구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미얀마로 돌아가는 것이고, 동행하는 형도 같은 마음이라 가는 마음이 좋다. 길지 않은 시간에 깊은 관계를 맺던 우리는 갑자기 본국 복귀 발령을 받았고, 우리를 못내 보내야 했던 친구의 깊은 아쉬움에 대한 답례로, 너무 늦지 않게 네가 쏟아준 정성을 보답하러 곧 갈 거라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서로 약속을 지켰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회사 일정도 고려해야 하고, 가족 동의도 구해야 하고, 같이 오는 동행자와도 다툼이 없어야 하고, 또 약속을 했던 친구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변덕스러운 마음이 심술을부려, 오지 말아야 할 이유를 수십 가지 만드는 저항의 힘이 만만치 않다. 이런 수많은 도전들을 극복하고 미얀마에 다시 가는 것은, 가는 우리도, 맞이하는 그들도 굉장히 정성스러운 노력으로만 가능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나는 온갖 어려움을 넘어 우리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이미지화된 선명한 계획이라고 본다. 형과 나는 여기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도착하기 전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곳에 오는 과정과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계획했다. 방해가 되는 상황과 마음들이 불쑥 길을 막을 때면, 우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미얀마에서 친구와 재회하는 장면을 의식에 이미지화했다. 나는 선명한 계획을 머릿속에 그린다면 어떤 현실의 한계라도 우습게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고, 결국 그 계획이 우리를 이곳에 무사히 데려왔다.
누군가는 그냥 여행 가는 것에 대단한 수식어를 붙이냐며 나의 의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투박한 마음들을 일일이 대응해 아니라고 애써 반박할 정도로 내가 무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인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를 소박한 본인들의 기준에 맞춰 재단해 헐뜯는 마음을 갖는 것을 보는 일은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다만 감사하게도 우리의 방문의 참뜻과 의도를 높이 평가하고 그걸 표현해주는 이들이 훨씬 많다. 내가 진짜 어울려서 살고 싶은 이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나는 스스로를 하나의 주식회사라고 규정한다. 아직은 이름뿐인 회사지만 언젠가는 가치 있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이 있는 기업으로 키워낼 생각이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한계들이 나의 의지를 꺾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도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 물론 이곳에 다시 온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은 대단한 정성으로 가능했음이 틀림없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런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내가, 나를 좋은 기업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애써준 나와 형, 그리고 친구, 우리의 가족들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모든 조력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만일 이곳에 오지 못하고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오랫동안 깊은 후회 속에 괴로워하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치명적으로 잃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