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124

깊고 고요하게 타인을 눈을 바라보자

by 미스터Bit

조용하던 일상 가운데, 오랫만에 시끄러운 소음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상담을 하던 여직원의 데스크에서 날카롭게 각진 관상의 50대 남성 손님과 고성이 오가더니, 급기야 손님이 선을 넘고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달려가 흥분을 가라앉히길 정중하게 부탁한 나에게도 공격모드를 켜더니 쌍욕을 무차별적으로 꽂았다. 순간 마음이 움찔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고 어느 때보다 차분히 상황을 리드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면전에다 쌍욕을 박은 무례한 타인과, 감정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충돌하지 않은 경우로 기억된다.

다시 생각해봐도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신속했고, 논리적으로 단단했고, 무엇보다 감정 컨트롤이 차분하고 묵직했다. 마치 흥분한 들개를 맹수가 느긋하게 관망하다 제압하는 장면처럼, 압도적으로 상황을 완벽히 컨트롤 했다. 무례한 손님은 몇번의 발작을 더하다 동요없는 나의 태도에 지쳤는지 이냬 잠잠해졌다. 결국 인근 파출소의 잘생기고 예쁜 경찰관분들이 와서 상황이 정리됐다.


작정하고 달려들어 공격하는 거친 상대를 면전에 두고 심적인 동요나 흥분없이 완벽하게 차분히 상황을 컨트롤 하는 나를 보며, 그간 연습하던 마음 훈련이 꽤 성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제법 뿌듯했다. 고요하다가도 미풍만 불어도 내면에서 들고 일어나는 먼지같은 마음들이, 그래도 꽤 무게가 늘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동료 직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로 각인되어, 나라는 브랜드의 이미지 가치가 상당히 올라간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나중에 경찰관이 오고 나서야 사건을 발단을 듣고보니 황당했다. 본인이 착각을 해놓고는 직원이 그 부분을 언급하자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모욕적인 인신공격을 비롯해 욕을 한것이고, 그 타이밍에 내가 개입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술이 취한게 아닌가 의심됐고, 술 냄새가 나지 않아 또 다른 마약류의 영항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울증 환자처럼 감정의 파고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롤러코스터를 탸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바로 옆에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여직원이 겁먹은 토끼눈을 뜨고, 정지자세로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도 없이 쌍욕을 먹는거야 나혼자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라 별것 아닌데, 막 사회의 나온 우리의 아이들에게 시작부터 민망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의 한명으로서 참 부끄러웠다.​

손님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이다보니 소위 진상 손님들을 만나는것은 예삿일이고, 나는 감정의 다침없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처리하는 편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어떤 직원들은 사람들의 언어 폭력과 무례함, 심지어 신체공격에 의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더 이상 일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

대한민국 사회가 물리적으로 노령화되어 늙어가는 만큼, 정신적으로도 노화증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나이 든 노인 뿐아니라 젊은세대들도 고된 현대살이에 푸르고 싱싱한 정신들을 잃어가고 있다. 약간의 관심으로 바라보면, 청춘의 동력이 병들고 시들어 가는 단서를 곳곳에서 쉽게 발견 할수 있다.

더욱이 실리콘 벨리의 거대 테크 기업들은 인류에 유익한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인류가 쉽게 중독될 만한 기술들을 더욱 빠르게 세상에 내어놓음으로써 인류의 정서적 퇴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인문학과 철학은 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 결과 우리의 본성은 야만으로 회귀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늙어가는 정신위에 다시 푸른 생명의 씨앗을 심으면 된다. 아주 약간의 공간만 타인을 위해 허락하면 된다. 타인의 눈을 바라봐 주는 것, 타인을 향해 웃어주는 것, 타인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것. 아주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치유와 위로가 될수 있다.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눈을 마주보는 퍼포먼스가 보여주었듯, 단 1분간 깊게 바라보는 행위만으로도 사람은 깊이 치유될 수 있다.

오늘은 작정하고,

깊고 고요하게 타인의 눈을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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