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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혁건 Jan 09. 2017

제2장 Don't Cry

줄 서서 기다리는 작은 행복

처음에는 휠체어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곤 했었다. 

반복되는 기다림과 시선에 조금 익숙해졌을 무렵, 한번은 목욕 도중에 갑자기 무방비 상태에서 변이 흘러나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덕분에 다음 목욕날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겐 왜 이렇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지금은 부모님이 2~3일에 한번 씩 나를 씻겨주신다. 

집 욕실에서 샤워를 할 때는 휠체어에 앉아서, 베란다에서 씻을 때는 리프트로 나를 내려 비닐을 깐 긴 테이블에 눕혀서 씻겨 주신다. 



간단한 샤워도 1~2시간은 족히 걸린다. 

아직도 나는 먹고, 씻고, 눕거나 옷을 입는 일조차 혼자하지 못한다. 

가끔 시간이 흐른 뒤 부모님이 떠나시고 나중에 내 곁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막막해지기도 하지만, 두려워만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제 내 할 일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며 좌절 할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 목욕을 기다리며 고개를 돌린 것은 내가 스스로를 창피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내 자신을 부끄러워 한 것이 가장 부끄럽다. 

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려본다.   

   

긴 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다릴 수 있다.

이 줄 끝엔 분명 행복이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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