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사고를 바라보는 소방관의 시선

by 소방작가

소방차량을 운행하다보면 차창 안을 향해 손을 흔드는 어린이들을 자주 보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아이들은 왜 소방차와 소방관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궁금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 종종 아이들이 만든 그림이나 손편지를 안전센터에서 받아보는 일이 종종 있는데, 종이 위에 고사리손으로 '저도 커서 소방관이 될래요, 다른 사람을 도와줄래요'하는 식의 메세지를 읽으면 내심 아이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맡아서 수행하는 소방관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았으면 싶은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상찬은 대단한 동기부여가 되지만 실제로 119에 신고하는 사람들은 아프거나, 다쳤거나, 사고가 났거나, 화재가 나는 등 불행한 재난을 직접 겪거나 목격한 사람들이므로, 그러한 사람들은 소방관에게 상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본래 일이라고 하는 것은 자력으로 소득을 일구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좋아요'와 '조회수'가 이윤을 만들어내는 시대이므로, 타인의 관심을 끄는 직업이 한 인간을 화려하게 수식해주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유행과 소방관은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출동을 나갈 때마다 칭찬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어쨌든 곤란에 처한 상황을 안전하고 뒤탈 없이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귀소하는 길에 박수 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소방서에서 하는 일 말고 칭찬 받는 일, 갈채 받는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본래 극단에서 박수 받는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으나, 꿈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제가 가진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느즈막히 공무원 시험을 쳤고, 소방관이 되어 군복처럼 계급장이 달린 근무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소방서는 병영 사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군대와 같은 소방서의 상명하복 문화는 선임 직원의 사적 심부름과 일방적 폭행으로 이어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소방서 생활을 그만두지 않고 버텨낸 것은 그저 제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절박한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살고 싶은 바람은 면체를 쓰고 기꺼이 화재현장 속으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제게는 사지 속에 살 길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사실을 늘어놓는 것이 무척 유난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박주영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부장판사의 저서 『어떤 양형 이유』속 「삶이 있는 저녁」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위험을 외주화하고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이 사망하는 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옴에 가장 적확한 단어는 퇴근이나 귀가일 수 없다. 생환이다. (···) 서울 구의역에서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스크린도어를 혼자 고치던 외주업체 직원, 열 아홉 살 김군이 쓸쓸히 사망했다. 김군이 사망한 지 2년 7개월이 지난 후, 태안에서도 혼자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또 다른 김군이 사망했다. 그도 역시 유품으로 컵라면을 남겼다. (···) 근로조건의 차이가 현저한 여명餘命의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는 암울하다."

소방서의 근무여건이 위험하다고 하기는 하지만, 타인을 구하는 일을 혼자 하지는 않습니다. 심정지 환자나 외상이 심각한 환자를 처치할 때는 구급차 2대가 동시에 출동하여 서로의 결점을 보완해주며 응급 구조 작업을 실시하고, 화재현장에서 진압 작전을 펼치다 불길에 갇힌 동료가 생길 경우에는 상시적으로 편성되어 있는 신속대응반이 고립된 동료를 구조하기 위해 개입합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트라우마가 생길 법한 재난 현장에서도 직원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사건에 집중하여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나 사고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순직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 1월, 문경의 어느 육가공 업체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생존자를 수색하기 위해 2인 1개조로 편성되어 진입했던 구조대원 2명이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셨습니다. 국민들이 소방관들에게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공익적 목표를 위해 감수하는 김수광 소방교(27)와 박수훈 소방사(35)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산업 현장은 어떨까요? 소방관들처럼 2인 1조로 서로의 안전을 확보해주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24년 기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589명으로, 사고의 유형은 떨어짐, 부딪힘, 물체에 맞음, 끼임, 화재·폭발 등으로 인한 것이었고 이중 상당수는 박주영 부장판사가 지적한 것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씨는 모두 2인 1조가 되어 작업해야 할 공간에서 혼자 일하다가 산재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물론 한 사람의 죽음은 무엇에도 빗댈 수 없는 고유한 사건이기에 순직한 소방공무원과 산재 사고사망자의 삶을 납작하게 숫자로 빗대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2대 589라는 압도적인 배수 차이 앞에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차이는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동료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린 차이가 아닐까요.

며칠 전, 제가 근무하고 있는 안전센터로 근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포스터를 전달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아이들아. 소방관 아저씨들을 존경한다 말해주다니 너무나도 고맙구나. 그러나 소방서에서 일하는 삶은 어쩌면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한 일이니,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의 귀여운 바람 쯤으로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러나 너희들이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산업현장에서 근무하게 될 무렵에는 어쩌면 소방관으로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위험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세상은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게 제일의 가치라고 말한단다. 그래서 위험천만한 작업을 할 때 네 등 뒤에서 안전을 살펴줄 신호수는 없을 것이고, 기계가 오작동 했을 때 비상 작동 정지 버튼을 눌러 줄 조원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보니 아저씨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아이들아, 소방서에서 같이 일하자꾸나. 뜨거운 화염이 분출하는 현장에 방화복을 갖춰입고 들어가는 것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비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태안화력발전에서 김용균씨가 2018년에 산재 사망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후 6년만에 동일한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는 50세의 선반 기술자 김충현 씨로, 그 역시 사고가 발생한 당시에 선반 기계를 곁에서 비상 작동 정지를 시켜줄 동료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발전소에서, 제빵공장에서, 제철소 등에서 박주영 부장판사가 말하는 것처럼 매일 소모품처럼 5명이 사망하는 나라. 이러한 세상을 제대로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못한 어른이 이렇게 예쁜 포스터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죄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생환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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