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이 우리를 속이기 전에

by 소방작가

8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보낸 서한으로 인해 세계는 바야흐로 적자생존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이 제시하는 국제 규범에 따라서 강대국과 약소국이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원탁에 마주앉아 논의를 발전시키며 동일한 기준에 종속되어 세계화와 자유 무역으로 나아가던 시대의 흐름은 이제 종언을 고하였습니다. 국제기구에 모여앉은 정상들이 각국의 입장을 조율하는 익숙한 모습 대신, 이제는 강대국이 개별 국가에게 경제적 식민화를 내놓고 요구를 하는 무역 서신을 개별적으로 발송하고, 협상 기한이 다가오면 밀실에서 약소국을 폭력적으로 찍어누르는 형태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밀실 속 책상은 원탁과 달리 국가 간의 공평한 지위와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는 대미 수출 시 막대한 관세가 부과되어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미국 상품에 대해서는 관세 없이 수입하며 자국의 산업과 시장을 외국 자본으로부터 방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규범을 제시하는 선도적 지위에 있던 모범 국가의 표변은 실제하는 생물학적 몸을 지닌 지구촌 시민들에게 원초적인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이제 힘이 약한 나라는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서 자국의 산업 생태계와 청년들의 일자리를 자유롭게 약탈해가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정을 합의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온 천문학적인 금액을 미국에 직접 투자하여 개발 사업에 기여하고, 그들의 액화석유 가스를 수입하며, 붕괴된 미국의 조선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배를 짓는 기술을 이전하고, 황폐화된 미국의 제조업을 보증하기 위해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는 것 등이 합의의 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장된 이윤 없이 리스크로 구성된 협의를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차를 몰고 학교 곁을 지나칠 때면 굴복할 수밖에 없는 외력에 의하여 좋은 일자리를 마련할 동력을 빼앗긴 사회의 기성 세대라는 것이 무력하고 원통하며 미래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20대와 30대보다 더욱 극단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사회를 바라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므로, 최대한 그들을 환대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자라나는 이들의 처지를 세심하게 살피며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초강대국의 부당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국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평온한 일상을 위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이가 흔들릴 정도의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워싱턴과 소통하여 비교적 지킬 것은 지켜낸 협정을 이끌어냈다고 평가받지만, 그럼에도 적잖이 상실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세계적 질서를 '뉴노멀'이라고 한다는데, 여기에는 기이하고 부당하며 정상적이지 않게 된 현실에 억지로 순응해야 하는 처치가 되었음에 대한 체념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뉴노멀'은 이제 당위적으로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국제질서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규범에까지 틈입할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아이가 자신이 지닌 싸구려 연필을 곁에 있는 학우가 소유한 고급 만년필과 바꿔 갖도록 완력을 앞세워 강요하고, 상호 합의하였다면 그것을 우리는 '굿딜'이었다고 트럼프 대통령 식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질서가 뉴노멀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로서의 뉴노멀은 대중의 도덕 감정을 무디게 만들며 기만의 발판을 만듭니다. 그것이 정치적 언어가 가진 사악한 힘일 것입니다. 그러나 뉴노멀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세계 자체가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강자와 약자가 올라탄 대지의 온도가 심상치 않기에 그렇습니다. 이상하게도 세계 곳곳이 뜨겁게 달궈지며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자연히 떠올리게 됩니다. 극한 호우로 도시가 침수하고, 급류에 사람이 휩쓸리며, 산불이 진화되지 않고, 빙하가 녹아내리고, 농작물과 가축이 폐사하는 등의 뉴스가 뉴노멀이 되어버렸습니다. 관내의 구조대는 가평으로, 광주로 극한 폭우와 함께 실종되어버린 구조대상자를 찾기 위해 자리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적자생존의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파워 게임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비틀리며 강자와 약자가 공평하게 앞으로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세계적 기조는 원탁이 무력화되며 파리 기후협약과 같은 구속력 있는 공동 대응에 대한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딜을 위해 국제적 행사에서도 자신의 할 말만 선언적으로 내뱉은 뒤에 독단적으로 돌아가버립니다. 그는 최근 기후 관측의 상징적 장소의 예산을 삭감해 기후위기는 허구라는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다지려고 합니다. 그곳은 탄소가 지구온실효과의 주범이라고 밝혀지기 이전인 1958년부터 묵묵하게 하외이 빅아일랜드 마우나로아 산에서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측정한 '마우나로아 관측소'입니다. 측정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뉴노멀을 선언하면, 그의 말을 믿고 싶어하는 전 세계의 지지자들은 그에 말에 호응하며 기후위기 대응에 제동을 걸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탄소배출에 관한 일관된 데이터베이스가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남극 빙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80만년 동안 이산화탄소 동도가 300ppm을 넘은 적이 없었지만, 최근 6월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30ppm까지 치솟았습니다. 인류는 지금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뜨거운 금성으로 가는 길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최근 아버지는 경비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더워서 체력적으로 버티기도 쉽지 않지만, 최근 아파트 단지 내 에어컨 실외기 화재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업무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 역시도 최근 예년과 다르게 여름철 전력 사용량 증가로 인한 화재 출동을 많이 나가는 편입니다. 최근 부산에서 밤사이 생업을 위해 아이들만 남기고 떠난 집에서 전기적 원인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아이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달아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관내의 아파트 실외기에서 발화한 화재를 진압하고 돌아오는 소방차 안에서 동료 주임님은 "나도 애들만 집에 두고 나왔는데 어쩌지? 걱정되어 죽겠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기후재난 시대의 뉴노멀인 것일까요?

국제사회의 현안은 안타깝게도 뜨거워진 지구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출혈 없이 미국과 협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돈 룩 업(2021)>을 보면 지구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운석이 하늘 위에 보이지만, 위정자들은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늘 위를 보지 않기 운동을 전개합니다. 돈 룩 업! 당장의 상황만 모면할 수 있다면, 힘있는 사람들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와 다르게 현실의 인류는 테라포밍할 수 있는 기술이 부재합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발생하였고, 지구에서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의 파워맨들은 그것이 뉴노멀이라며 진실을 향해 눈을 치켜뜨지 말라고 갈파합니다.

그러나 권여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고 썼습니다. 돈 룩 업하면, 우리는 결국 과녁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야에 여전히 과녁이 놓여있는 것이 맞나요? 그렇다면 표적을 놓치지 않게 정확하게 노려봐야 할 것입니다. 뉴노멀이 우리를 속이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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