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빅 이슈는 김건희가 특검에 공개적으로 출석한 것입니다. 검찰의 온갖 비호를 받아서 부패와 비리 혐의를 은폐하고자 했던 그에게 이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마음껏 전유하여 국정을 농단한 사이에 나라가 병들고 피폐해졌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건희가 저지른 모든 짓은 거짓과 허위를 발판 삼아 본인의 허영에 대한 허기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김건희는 윤석열을 통해 자연스럽게 획득한 공권력을 총력을 다하여 본인의 사적 이익을 획득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국가의 행정은 마비되고 대외 경쟁력은 하락하였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일종의 '민주적 사고'라고 설명하며, 마치 '코끼리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와 있는 격'이라고 초기에는 설명하였지만, 나중에는 우리 사회가 자동차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한 실험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충돌 테스트'를 감행하는 중이라고 나라의 상황을 묘사하였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비유가 정확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윤석열의 집권과 위헌적 비상계엄을 극복한 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진 것인지는 가까운 미래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건희와 윤석열의 공동정권은 온갖 국가 기관을 전복하거나 무력화하여 민주정의 생래적 기능이 파괴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민주정의 생래적 기능이란, 잘못된 것을 적발하고 공론화하여 올바르지 못한 것을 처벌하고 바로잡는 자정과 정화의 기능입니다. 사정 기관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상식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탄생한 윤석열 정권은 시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를 거추장스러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껏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했던 국가 기관을 초토화하여 권력 행사에 제한이 없는 '사자의 자유'를 꿈꿨습니다.
윤석열은 취임한 이후 줄곧 '자유'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연설 때마다 반복해 말했습니다. 자유는 일견 긍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한 말로 보여지나, 실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박구용 선생은 '사자의 자유는 사슴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윤석열이 자유롭게 통치하는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윤석열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인명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극한 호우로 인해 물이 불어나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숨진 자리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이태원 참사 현장에 나타나서는 그들이 압사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뇌진탕으로 사망했다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본인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것 외에 애써 국민들의 삶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행정부의 수장이 공익을 수호하는 '공무원'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대한 이해 역시 부재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권력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고, 이를 통해 강제력을 행사할 자유를 마음껏 누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말합니다. '왕좌에 앉은 자는 편히 잘 수 없다.'
윤석열은 힘을 행사할 자유와 사익 추구를 위해 공권력을 전용할 자유, 비판받지 않을 자유, 공무를 신경쓰지 않을 자유를 얻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다하면 그동안의 잘못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제와 비판을 통해 균형을 도모해야 할 동반자적 관계인 야당의 유력 주자를 향해 사법 공격을 감행하였고, 그 방법으로 제거되지 않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초기에는 계엄이 다분히 충동적인 결정에 의한 것처럼 추측되었지만, 언론의 본격적인 취재 결과 치밀하게 기획된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독재자가 되고자 한 것은 곱게 늙은 자의 오래된 소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서는 준비한 계획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아 억울하고 원통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구속영장이 집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음에도, 수의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누워 특검의 조사를 거부하며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을 수 있으나 결코 성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에 저서 《한국이란 무엇인가》에서 <미시적 독립투쟁을 찾아서> 부분을 읽어보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와 같은 대업만이 독립운동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일상적이고 교묘한 불복종 운동 역시 선조들이 미래를 위해 감행한 독립운동입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파들은 적극적으로 내선일체를 이룩하여 조선의 완전한 식민화를 완수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 땅에 이주하여 정착한 제국의 거류 일본인들은 조선인보다 정치적 우위에 서기 위해 일본인과 조선인이 동일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였습니다. 반대로 조선인들은 내선일체에 본능적인 거부감과 함께, 조선인을 지독하게 수탈하는 일본제국이 조선인을 일본인들과 동일하게 대우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교묘하고 악독한 억압과 지배의 논리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선땅에서 진실로 내선일체를 바랐던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계엄은 어떨까요? 윤석열을 도와 작전을 지휘했던 소수의 사령관과 고위 관료들을 제외하면, 국민 일반에게 계엄이 성공하여 독재 국가가 되는 것이 이로울 리 없습니다. 그것은 국회와 선관위에 출동한 계엄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불복종 독립 운동을 펼쳤던 선조들처럼, 계엄 작전 실행에 소극적 사보타주가 있었고, 덕분에 국회에 모인 시민들의 힘으로 계엄을 해제하고 수괴를 비롯한 중요 임무 종사자들이 현재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민들은 윤석열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이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염원은 이뤄졌습니다. 김건희는 어제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리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실패한 쿠데타 세력이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에게 발송한 '항복 선언'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김건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김건희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되돌아가길 바랐던 대다수의 국민들의 바람으로 그의 어깨에 놓인 거대한 계급장을 떼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독립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조그맣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