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편지 - 25년 7월
덥고
습하고
지루한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구원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그래서 피서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피서였지요.
호주의 시드니는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이라고 해봤자 우리나라 10~11월 날씨이긴 했지만요.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온도와 냄새와 습도가 달랐습니다. 맑은 날씨에 따뜻한 햇살이(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씨였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워서 거의 하루 종일 밖에서 날씨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좋은 날씨도 잠시 뿐......
다음 날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햇살이 사라진 시드니는 추웠습니다. 더위를 피해서 남반구에 왔는데, 정말 제대로 피하다 못해 추운 곳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부슬 비를 맞으며 동네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잔뜩 사고, 카페에서 둘째와 함께 음료를 마시며 옆 자리에 놀러 온 커다란 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시와 반팔과 경량패딩과 어그, 그리고 레인재킷과 슬리퍼가 공존하는 이 나라는 이래서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하고요. 날씨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마어마하죠. 심지어 뇌가 돌아가는 속도까지도 기온에 좌우되기도 합니다.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뭘 입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덕에 생각과 영혼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계절 별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와는 그 부분이 다름의 분기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겨있다 브레이크 타임을 알리는 소리에 다시 부슬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카페에도 브레이크 타임이 있답니다. 여유로운 동네입니다.)
마치 이 세계에 갔다가 돌아온 것처럼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훅 끼치는 뜨거움과 습기는 한순간에 나를 현실로 복귀시켰습니다.
제대로 된 피서는 산더미 같은 빨래를 남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자, 이제 한 달 남짓 남았군요. 불가마 속에서 녹아내려 사라지지 않게 잘 지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