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ː명 [생명] 04. 취람색

색 이름에 생명을 불어넣다 / Jade Green

by Pink Brown

[취람색]

흐린 녹색

먼 산에 안개나 구름이 끼어 푸르스름하게 흐릿하게 보이는 녹색을 말한다

[에피소드]

나는 단어를 모은다.

많은 단어란 마치 레고를 만들 때 많은 레고 블록을 모으는 것과 같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블록을 많이 모을수록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진다. 어떤 블록이 있는가에 따라 만들고자 하는 결과물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단어가 많이 모아질수록 쓸 수 있는 글도 달라진다. 같은 글이라도 단어의 쓰임에 따라 생생해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고, 수다스러워지기도 하고, 진중한 독백이 되기도 한다. 취람이라는 단어는 우리말 색이름에서 처음 접한 단어이다. 나름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역시 모르는 단어는 한없이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먼 산에 무언가가 부옇게 끼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녹색이라. 그 이름이 취람이라. 단어 자체로 몽환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마치 영화 동사서독에 나오는 취생몽사(기억을 잊게 해주는 술의 이름) 같은 느낌이다. 공기 중에 습기가 가득한 무더운 어느 날, 부연 공기에 가려진 나뭇잎의 색이기도 할 것이고, 가을날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안개가 겆히면서 보이는 잔디의 색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그러한 자연을 마주치게 되면, 취람색이네, 하고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진다. 나중에 꼭 써먹을 예정이다.

또 다른 새롭게 발견한 단어는 두록이다. 두록색이라는 색이름이 있었다. 옅은 노랑과 연두의 색을 띤 대두, 완전히 다 익어서 수확한 생콩의 색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두록, 두록, 두록, 두록. 귀엽다. 도록도록도록도록 굴러가는 느낌이다. 연한 연둣빛 노랑이라는 것이 두록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우리나라 말의 표현력이란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두록은 맞춤법 검사를 하면 오류 의심으로 나올 만큼 생경한 단어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만의 색]

취람은 몽롱한 느낌을 준다. (물론 나만의 느낌이다) 취람은 왠지 현대보다는 먼 과거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티에 바지 차림보다는 도포에 갓이 어울릴 것 같은 단어이다. 그래서 취람은 나에게 먼 옛날의 색이다.


출처 : 색이름 (오이뮤, 20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