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편지 - 25년 11월
배추를 다듬습니다.
어디까지 떼어내고 잘라낼지는 다듬는 사람 마음이죠. 하다 보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쪼개서 소금물에 재웁니다. 소금물 농도도 만드는 사람 마음입니다. 절여진 배추가 싱거울지 짤지는 하늘만이 알 수 있습니다. (배추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절여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배추는 말 그대로 한 밤을 재웁니다. 중간에 잘 뒤집어서 골고루 재워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김장은 첫날부터 불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날이 밝습니다.
새벽부터 절여진 배추를 조금씩 뜯어먹어보며 소금물에서 헹궈낼 타이밍을 잡습니다. 맑은 물에 씻어낸 배추를 고운 머릿결 정돈하듯 잘 만져준 후 물기를 짜내고 소쿠리에 차곡차곡 포개어서 나머지 물을 뺍니다. 배추가 산더미처럼(어쩌면 그냥 소복하게) 쌓입니다.
배추에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김칫소를 만듭니다.
무를 채 썰고, 갓을 잘게 다듬고, 파는 숭덩숭덩, 마늘과 생강은 빻아줍니다. 각종 가루 양념들을 준비하고 일부는 믹서에 곱게 갈아 놓습니다. 쑤어서 식혀놓은 밀가루 풀에 갈아놓은 양념들을 잘 섞고, 잘라둔 속재료를 넣습니다. 이제 힘 좋은 사람이 잘 섞어주면 됩니다. 양이 많을수록 힘 좋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섞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온데 고춧가루가 튀고 아이들은 재밌다는 듯 구경을 합니다. 엄마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보지만 말을 들으면 아이들이 아니지요. 어느덧 속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지고, 간을 보는 대장님께서 소금을 더 넣을지 말지를 계속 고민합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배추 속을 잘라 김칫소를 넣어 말아주는 것을 옆에서 연신 받아먹습니다. 그러면서 짜다 맞다 아니다를 대장님과 토론합니다. 결국 결정은 대장님의 몫입니다. 이제 활은 시위를 떠나갔습니다. 배추에 속을 넣고 배추통에 가지런히 꽉꽉 채워 넣어야 할 때입니다.
배추 속을 넣을 동안 주방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돼지고기 수육이 삶아지고 있습니다. 된장, 통마늘, 월계수잎, 통후추와 같은 잡내를 잡고 간을 맞추기 위한 양념이 첨가됩니다. 정신없이 김치통을 나르고 배추 속을 채우고, 다 채워진 김치통에 묻은 고추양념을 잘 닦아내서 뚜껑을 덮어 베란다로 옮깁니다. 그 사이 온 집안은 고춧가루 투성이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대장님의 허리가 끊어지기 일보직전으로 치닫습니다.
고기가 다 익고, 김장은 끝이 납니다. 최대한 치울 수 있는 데까지 치우고 수육과 방금 만든 김장김치로 한 상이 차려집니다. 이걸 먹기 위해 김장을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맛나게 배부르게 먹습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의 이틀은 이렇게 지나갑니다.
잎으로 또 볼 수 있을까요? 김장하는 초겨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