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험을 앞두고 땅콩 수확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 말씀드렸다. 두 분이 하시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수확 일자가 다가오는 내내 두 노인께서 허리가 다리가 무릎이 아프도록 일하시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할아버지 할머니 도와드리러 다녀와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흔쾌히 답했다.
아침 눈 뜨자마자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속히 옷을 갈아입고 차 열쇠를 챙겼다. 두 분은 왜 왔냐고 책망하는 대신 반가이 나를 맞이하셨다. 아직 작은 알들이 많으므로 수확 시기를 조금 더 늦추는 게 낫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나중으로 일을 미루고 싶은 심산도 있기는 했다. 다 영근 알들은 수확하지 않으면 금세 싹을 틔우면서 썩어버리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셨다. 캐는 과정에서 땅콩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부위를 다소 넓게 캐고, 영근 알들을 선별하여 떼어내고, 영글지 않은 부분과 함께 뿌리를 다시 땅에 묻는 작업을 했다. 수확한 땅콩은 물로 깨끗하게 씻어낸 후 평상에 말렸다. 말리던 땅콩을 이따금 휘저어 고루 햇볕을 쪼이며 마르도록 했다. 고단한 밭일 후 생땅콩을 많이도 까서 먹었다. 내가 간 것이 못내 기쁘셨는지 꼭 안아주시며 일당을 십만 원이나 챙겨주셨다.
-땅콩 수확
경력 단절이 두려웠다. 위로는 마음으로만 고마웠다. 허우룩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나의 도움을 구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눈물이 짭짤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당신도 나에게 그렇다.
-필요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