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Request!
대학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척이나 반갑다.
여름휴가철이 지나고 나서, 마지막 주에 강릉으로 나를 찾아온다고 하니 더 반갑다. 제수씨도 함께 방문한다니 더 흥겹다. 제수씨는 내 대학 동기다. 서로 다 아는 사이란 말이다.
드넓은 백사장의 타는 듯한 구릿빛 안전요원은 자취를 감추고 그 흔적마저 사라졌지만, 여름날 해수욕장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흥취는 여전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자석처럼 들러붙어 한없이 맴돌고만 있다.
경포 해수욕장 솔밭에서 모처럼만에 손도 잡아보고 인사한다. 제수씨도 반갑게. 'ㅇㅇ아, 하나도 안 변했다. 마치 어제 만난 것만 같아.' 오로지 올라간 이마 선과 하얘진 머리카락으로만 그 간의 시간을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솔밭에 앉아 서로 세상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은퇴 후 살아가는 방법 등을 정겹게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담을 넘어버렸다. 불도장처럼!
그 와중에 여가 시간에 대해서 물어보니, 당근 서예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었다. 서예의 기쁨에 대해서 침을 튀기고, 얼마 전 있었던 서예 전시회 기간 동안의 사진과 작품을 보여주면서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자, 친구는 대뜸 자기네 집 가훈을 붓글씨로 써서 액자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작가로서의 첫 작품 의뢰다. 그것도 친구로부터. 불감청고소원이라더니 이럴 때 쓸 수 있는 적확한 말이다.
써 달라는 글귀는 내충외서. 간단한 한자의 4자성어이다. 외유내강과 비슷하다고 하네. 쓰기는 쉽겠군. 나름 심과 혈을 기울여서 정과 성을 들여 예쁘게 써줘야지. 작가로서의 첫걸음이자 첫 작품이니까. 작품료로 한 장 받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친구라 받을 수도 없고, 옛다, 기분이다. 걍 재능기부다!
해물뚝배기, 솥밥, 순두부 등에서 저녁을 한 번 정해보라고 권한다. 부부간에 애정인지, 실랑인지 옥신각신인지 모를 그 무엇이 잠시 동안 이루어지고, 메뉴는 당연히 강릉에 왔으니 순두부로 정해진다. 순전히 나의 독자적인 판단과 생각이지만, 강릉의 순두부집 중에서는 차ㅇㅇ순두부집이 최고다. 거기 청국장이 제대로다. 거기 청국장이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으면서 죽이거든.
후루룩, 쩝쩝! 맛있게도 냠냠!
친구 내외는 지도상 강릉 위에 위치하고 있는 속초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회사 근처 파나마 커피숍으로 와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둘이서 알콩달콩 즐기고 있다. 정작 회사일로 바빠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자기 회사 기념품 한 세트를 커피숍에 맡기고서 집으로 퇴장했다. 일을 마치고 서둘러 커피숍에 들러 물건을 찾아온다. 텀블러와 수건이다. 이쁘다. 맘도 이쁘다.
며칠이 지나 스승님이 미국에서 돌아오셨다. 체본 시간에 외충내서를 써 달라 별도로 부탁을 드렸다.
사연을 아시고는 감사하게도 체본을 흔쾌히 써주신다. 선생님께 체본을 받은 그 즉시 체본을 한 번 쓰윽 보고 나서 정성스레 외충내서를 써 본다.
쓰고 나니 그럴듯해 추석선물로 보낸다고 사진을 찍어 톡으로 잽싸게 보내 본다. '추석선물은
요런 느낌으로다가 써줄 테니 가보로 간직하쇼. 작품비는 한 장이면 되네!'라고 은근 선심성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협박성 문자를 보내본다.
'우와 ㅎ 고마워. 멋지다. 잘 쓰네'라고 답톡이 온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친구가 알아주니. 그래서, 옛사람들이 친구를 지음(知音)이라고 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친구를 지문(知文)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추석 안부를 묻다 보니 일전에 써 준 문구가 잘못되었단다. 외충내서가 아니라 내충외서라고.
아차, 저런 큰일 날 뻔했네. 어쩐지, 네이버에 외충내서는 안 나오더라니! 부끄럽게도 내충외서는 버젓이 검색만 잘 된다. ㅋㅋㅋ.
[지음(知音)]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춘추전국시대의 이름난 거문고 연주가인 백아와 종자기는 가까운 벗이었다. 종자기는 늘 백아가 연주하는 곡을 듣고 백아의 마음속을 알아채곤 했다. 백아가 산을 오르는 생각을 하면서 연주하면 종자기는 태산과 같은 연주라 말하고,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흐르는 강의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에 백아는 진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知音) 사람은 종자기밖에 없다고 하였고, 이로부터 지음이라는 말은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둘 도 없는 친구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알아주던 종자기가 병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더 이상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한탄하고 거문고의 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또 다른 고사성어로 백아절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열자에는 없고 여씨춘추에 있다.
(네이버, 나무위키 발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