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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Sep 03. 2024

한국 라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난 9월15일은 한국 라면 출시 60주년 되는 날이었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배불리 먹고 살지만

60년 전은 그렇지 못했다.

보험회사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삼양라면 창업자인 고 전중윤회장은

점심시간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부대 잔반으로 끓인 ‘꿀꿀이죽’을

사러 긴 줄을 서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한다.

직접 한 그릇 사서 먹어보니

담배 꽁초도 나오고

깨진 단추며 각종 불순물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싼 맛에 배를 불릴 수 있으니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또 체험하면서

1959년 일본 출장길에서 처음 먹어본 라면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후, 사재를 털어 자금을 모아 일본으로 향했다.

그때가 1963년 4월이었다.

그는 일본 라면 기업들을 찾아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당시만 해도 엄청난 기술이요 노하우였는데

어디 아무에게나 전수해주겠는가?

더욱이 일본의 기업이

대한민국 기업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어불성설이었다.

모두 말도 못 붙이게 할 정도로

강한 거부를 당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대문시장에서 먹었던 꿀꿀이 죽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절망 끝에 마지막 찾은 곳이 ‘묘조식품’이었다.

묘조식품의 오쿠이사장이

왜 라면을 만들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더러운 꿀꿀이죽 먹는 동포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끝에

오쿠이사장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두사람의 강열한 만남으로

드디어 대한민국에 라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10일 동안 공장에 머물면서

라면 생산 기술을 배웠지만

수프 제조법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귀국길에 사장 비서가 공항에

봉투 하나를 전달했다.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수프 배합표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저 말고

회사에 몇 사람 없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배고픈 사람을 위한 좋은 제품을 만들기 바랍니다”

오쿠이 사장의 용단과 배려의 손편지였다.

이렇게 드라마 같이

대한민국에 라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어렵게 시작한 대한민국 라면산업은

이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올해 9월까지 100여 개 국에

약 9000억원 수출을 하고 있다.

라면의 역사는 일본이 시작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라면의 인기는

일본 라면 저리 가라 하고 있다.

배고픈 조국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기업인의 끈질긴 노력과 용기-

그 진정성에 감동한 일본 기업 사장이

만들어낸 휴먼 스토리다.

이런 브랜드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류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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