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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Nov 01. 2024

엄마는 어머니날에도
자식을 생각합니다

브라질에서 집행된 Electrolux 브랜드의 광고 카피다.

가슴이 먹먹해 오지 않습니까?

세상의 엄마는 다 똑 같은 것 같다.

우리나라 ‘치매 국가 책임제 광고’에서는

더 가슴을 후벼 파는 카피가 있다.

‘저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의학 발전으로 이제 인간은 잘 죽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병원은 인간을 곱게(?) 죽게 하지 않는다.

온갖 노력을 경주하는데

그것이 과연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슬프게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안락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문제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물론 뉴스에 몇 년 만에 의식을 회복한 경우도

보도되지만 웰 다잉 문제로 본다면

노인들의 연명 치료는 생각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4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많이 위축되셨다.

그 모습을 보기 참 괴로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나는 마음 속에 전혀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달에 한 두 번 찾아 뵐 때마다

약해지시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지만

설마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어려서도 아니요 바보라서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내인 나를 영원히 보호하실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정말 ‘신사임당 상’을

100번을 받아도 모자라는 그런 엄마였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물론 그 시절 어느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주변의 어머니들과 비교해 봐도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은 안 계셨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희생적이고 자식을 생각한다.

가끔 동물 관련 다큐를 보면

동물들도 자기 세끼를 낳고 키우는데

온갖 노력과 희생을 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말해서 뭐하겠느냐!

내 생각엔 그래도 나의 엄마처럼

희생의 아이콘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였기에

내 아내의 희생과 노력을 보면

엄마와 많이 닮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석사를 하고 수도권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탄생해

전업 주부를 하는 언니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고 부탁을 했지만

그녀의 마음 한 곳에서 커가는 죄책감은

결국 아이를 위해 본인의 미래를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설령 안다고 해도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생각을 할 테니까 의미가 없을 지 모르겠지만

함께 산 나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때 자식을 위해 본인의 미래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마음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한다.

맞다! 어쩌면 경중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식은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고 본다.

나를 이렇게 키운 ‘엄마’의 위대함을…

한 조사에 의하면 세상의 언어들을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언어에 엄마를 나타내는

말의 알파벳은 ‘M’이 들어간다고 한다.

음성학적으로 ‘M’이 가장 쉽게 발음되는 문자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아이가 기대고 의지할 곳은

엄마이기 때문에 가장 쉽게 발음되는 알파벳으로 되어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생존을 위해서

쉽고 빠르게 의사 소통할 수 있는

단어로 구성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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