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이렇게 탐스럽게 오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Tv를 켜니 온통 첫눈 소식이다.
밖을 보니 상상 이상의 눈이 내리고 있다.
비는 연결지어 내리는데
눈은 크기가 달라서인지
비와는 다른 느낌으로 내린다.
대중소로 갈라서 보이다가도
어느 싯점에는 덩어리 채로 내려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을 보면
가슴에 점들이 커지는 것 같다.
예전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와 뛰놀던 어린시절부터
눈이 오면 그날이 바로 전쟁 난 것처럼 눈싸움을 하던 초중고시절….
만나서 첫눈을 보고 웃었던 첫사랑도 생각나고
눈뭉치처럼 추억들이 쌓여간다.
마음 속에 그런 추억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인생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오늘 첫눈은 스케일이 다르다.
대개 첫눈은 간에 기별이 갈 만큼만 오는데
오늘은 함박눈이 쌓이도록 내리고 있다.
그리고 첫눈은 잘 뭉쳐지지 않아서 눈싸움도 잘 안되는데
오늘 눈은 잘 뭉친다.
어린시절이었으면 눈싸움 각이다.
어린시절에는 첫눈과 관련된 약속도 많았다.
첫눈오는 날 00역에서 만나자 등
이런 이뤄지지 않을 약속들을 많이 했다.
그런 약속이 지켜졌다는 말을
많이 듣지는 못했다.
대개 기분에 취해서 약속을 하지만
당일이 되면 또 다른 일과 약속으로
먼 옛날 했던 약속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재수할 때
종합 반 친구들이 다음 해 첫 눈 올 때
학원 근처의 대형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마 그 때 나온 친구들이 열두세명은 되었던 것 같다.
출석이 나쁘지 않았다.
대학교는 다 달라도
암울했던 재수 생활을 함께 했던 전우 같은 친구들이었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학원 선생님들 흉내를 내고
수업 땡땡이 치며 놀던 이야기도 하고
신나게 술을 마신 기억이 있다.
아마도 첫 눈이 아니었으면
그런 낭만이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눈 광경은
내가 좋아하는 경포대에서였다.
모래 위에는 눈이 쌓이지만
바다 위에서는 파도 따라 사라지는
진기한 풍광을 보면서
온통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강릉이 커피의 도시가 되었지만
내가 자주 가던 그 당시에는
겨울에는 썰렁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때가 좋은 것 같다.
여름에야 원래 사람이 많지만
겨울은 바다를 보면서 사색하고
걸으면서 뭔가 새로운 생각들을 정리하면 좋을텐데
지금은 마치 서울의 한 단면 같아서 싫다.
또 뉴욕에 6개월 정도 머물 때
눈이 오면 센트럴파크에 가끔 갔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아무 생각없이
눈을 바라보고 커피 마시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마치 원시림처럼 우거진 곳에서
눈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반면에 우리 가족이 사는 토론토는
눈이 무서울 정도로 내린다.
한번 내리면 20cm는 보통이다.
주택가가 완전히 봉쇄된다.
모든 학교가 클로즈된다.
안전 때문이다.
아파트 주변은 온통 강아지 세상이 된다.
눈이 오는 양에 따라 즐기는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눈이 오면
눈처럼 추억이 겹겹이 쌓인다.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날이다.
오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전 직장의 동료인데
내 사무실 가까운 곳에 왔다고 한다.
눈은 이렇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