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난 인문학 Dec 26. 2024

모유를 먹지 못한 아이

 나는 3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엄마는 막내인 나를 출산하면서 당시의 의료 수준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위급한 상황까지 가서

6개월 이상을 입원하셨다.

따라서 나는 엄마의 젖을 먹을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초유를 먹지 못했던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같은 동네의 먼 친척이

3개월 전에 출산을 했는데

할머니가 나를 포대기에 싸서

그 친척의 젖을 먹였다고 한다. 

엄마의 젖을 한번도 제대로 양껏 

먹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늘 칭얼대는 아이가 되었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였을 것이다. 

친척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겐 

나보다 자기 새끼가 먼저였을 것이다.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을 주고 젖을 먹였지만 

자기 새끼가 먼저고 나는 그 집 딸이 배불리 먹은 연후에나

내차지가 되었다. 

나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난 그 집 아이가 

배불리 먹고 난 연후에

내가 젖을 빨 수밖에 없었으므로 

자연히 나는 나오지 않는 젖을 빨면서 칭얼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 이모님은 내가 어찌나 젖을 세게 빨았는지

아팠을 정도였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젖이 양 것 나오지 않으니

나는 본능적으로 세게 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기 살기의 게임, 즉 생존이 걸려 있었기에

나는 나오지 않는 젖을 힘차게 빨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모님의 고통이 심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퇴원하시고

나를 안고는 그렇게 서럽게 우셨다고 한다.

엄마의 젖을 먹여야 하는데

엄마로서 그것을 못했으니 얼마나 한스러워겠는가?

퇴원하고 오셨지만 이미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엄마의 젖은 말랐고

그래서 나는 엄마의 젖을 한모금도 못 먹고 자란 아이가 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젖 동냥으로 커서 인지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심했다고 한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늘 미안해하셨고

나는 어머니의 과잉 보호 속에 성장하게 되었다.

‘원기소’라는 영양제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2,3년까지만 먹이는 영양제인데

나는 중학생 때까지 먹었다.

안 먹는다는 나에게 어머니는 고집스레 먹이셨다.

중학생 때에도 어머니가 싸 주셨는데

친구들 몰래 먹는 게 고역이었다.

친구들이 아이냐고 놀릴까봐

늘 감춰서 먹은 기억이 있다.

5,6년 전에 우연히 들은 강의에서

인간을 비롯해서 포유류는 새끼의 성별에 따라

모유 성분이 다르다는 주제의 내용을 들었다.

수컷을 낳으면 사냥과 힘을 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유 성분에 단백질과 지방 성분이 많고

암컷을 낳으면 2세를 위한 준비 단계로 

칼슘 성분이 많다는 것이다.

즉 다음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

임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유 성분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여성 취향이 많은데 그것도 모유 성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쇼핑을 좋아하고

힘쓰는 일 보다는 사유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그 때 딸 아이를 낳은 이모의 젖을 먹은 영향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아무튼 어머니가 아프셔서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하고

딸 아이를 낳은 이모님의 젖을 먹게 된 것이

오늘 날 나의 원형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하니 놀라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