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불안은
누군가의 기대가 된다.
우리 세대들은 남녀가 1박 이상의 여행을 간다는 것은
곧 사랑을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회사의 젊은 친구들은
서슴없이 ‘박’으로 여행가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관계에 그 무엇을 따지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가볍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세대들의 오픈 마인드가 부럽기도 하고
우리 세대들의 폐쇄성에 놀라기도 한다.
우리 세대들은
남녀 친구가 섹스를 하는 순간
우정은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세대다.
우정이 애정으로 바뀌던가
아니면 서먹서먹한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친구도 연인도 아닌 심리적 공백 상태상태가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주제를 쓰는 자체가
‘꼰대’ 마인드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무엇을 못하겠는가?
그러나 아직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의 방편으로
‘박’으로 여행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속고 속이는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연출되기도 한다.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 요소로 즐기지만
막상 저 상황이 내 문제가 되면 마냥 웃을 수는 없다.
특히 여자 측에서는
고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마도 여자가 고민하는 모습은
유교 교육을 받은 동양 3국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의사 결정이 너무나 많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겉치레로 보이는 것도 많다.
사랑은 두사람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반대한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필요는 없다.
부모가 반대해도
그 반대 의견이 합리적이지 않으면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서사를 다 알 수는 없지 않는가?
난 아이들의 판단과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다.
내가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한 적은 없다.
다행이 둘 다 본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우리 세대에는 사귀어서 결혼하는 비율과 선을 봐서 하는
비율이 비슷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한 두 번 만나보고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만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의 청춘남녀들이 하는
사랑법과 결혼하는 스타일을 존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만나고 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이다’라는 판단이 들면 결혼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들의 의사가 확고하면
그 때 부모님들과 상의하고 결혼의사를 밝히면 되는 것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다.
주변에 정략 결혼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
잘 사는 부부도 있지만
어찌할 수 없어 살다가 이혼하는 경우도 종종 봐왔다.
보통의 중산층에서는 이런 경우 대개
돈으로 결정하는 경우들이 많다.
겉보기에는 행복하게 보이지만
당사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모른다.
몇 년 전 광고 시안을 결재 받으러 회사에 갔다.
담당자와 임원이 오케이를 했고
회장님의 결재도 득했다.
제작하려고 하는데 담당 임원이 한단계가 더 남았다는 것이다.
오늘은 회사에 돌아가고
자기들이 부르면 다시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틀 정도 있으니까 임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시안을 들고 회사로 급히 와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안을 챙겨서 회사에 도착하니
그 임원이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회장님 사모님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주의 사항을 몇 개 전달했다.
사모님이 이견을 말해도 절대 반대 의견을 내지 말고
‘알았습니다’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내 직업 성격상 전혀 맞지 않았지만
알겠다라고 말하고 회장님 댁으로 출발했다.
차가 지하로 들어가니 작은 방 같은 곳이 있고
거기서 우리 신원을 확인하고 인터폰으로 연락을 했다.
그런 절차를 밟고 올라가니
거실에서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다과를 내놓으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나니까
드디어 회장 사모님이 나왔다.
인사를 드리고 시안 설명을 간단하게 했다.
꼼꼼히 보더니
“고생하셨어요, 진행하시죠”라는 멘트를 남기고
다시 안으로 사라졌다.
결재를 득하고 임원과 함께 회사로 돌아가는 데
너무나 고생하셨고 사모한테 데뷰 전을 이렇게
쉽게 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이 앞으로 너무나 편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자 집안의 재력과 남자의 머리가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일을 쉽게 했다는 생각보다
이런 시스템으로 일하면 과연 효율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삶이 돈과 명예가 있어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결코 어느 한쪽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평등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남녀 관계가
기본적으로 행복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