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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게

2024.09.11

by So

여름에게,


당신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난 당신을 ‘여름’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남긴 마지막 편지가 나에게 도착한 것은 어떤 여름이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향해 꾹꾹 눌러쓴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난 어떤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여름날, 집에 돌아가는 골목.

어디선가 포근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고, 나도 모르게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골목에 있던 어떤 여인숙.

살짝 열린 녹슨 대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어 그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고, 몇 개의 방들이 디귿자로 있던 여인숙.

마당에 있던 빨랫줄에는 이제 막 빨래를 마친 이불이 걸려있었고, 이불에서 물이 뚝뚝 흘러 바닥에 조금씩 물길을 내고 있었습니다.

포근한 냄새.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한 여인이 마루에 걸터앉아 칙칙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매캐한 냄새.

이불에서 나는 세제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여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울리고, 뿌연 담배 연기는 조금씩 벌겋게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로 피어났습니다.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던 그녀의 멍한 눈동자.

끼익.

조금 더 그녀의 표정을 훔쳐보려다 대문에 기댄 몸이 휘청였습니다.

그녀와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들숨소리처럼 담배가 타들어가고, 잠깐의 정적.

그녀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그 마당에서 나던 세제 냄새와 담배 냄새가 내내 나의 뒤를 쫓아왔습니다.

종종 어떤 여름밤에, 그녀의 눈동자가 떠올랐습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은 그 눈동자가.

당신이 마지막 편지를 남기기로 마음먹은 동안 지었을 그 표정.

그 눈동자를 마주 보고, 눈으로라도 당신을 어루만져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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