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by 고작가

언제부터인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시내 식당들에서도 예약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손님들이 예약을 하고 오는 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우리 가게 역시 평일 점심시간에는 거의 대부분의 좌석이 예약 손님들로 채워지곤 한다. "강수연, 이순신, 손석희, 이승엽...." 예약 명부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름 석자가 적힌다. 대부분은 동명이인이거나, 예약명을 가명으로 잡아놓는 경우들이다.


점심시간, 카운터를 봐주기 위해 뒤늦게 나오신 어머니가 "오늘은 유명한 이름이 많네" 하면서 예약 명부를 훑어보신다. 그리곤 손님들이 차례로 들어오면 예약 명부를 확인하고 테이블을 알려 주신다. 그날도 어머니는 줄지어 들어오는 손님들을 능숙하게 안내하고 계셨다. "홍명보, 홍명보, 어 여기 있네" 명부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손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어, 진짜네?!" 당황한 홍 감독님은 웃으며 "네, 진짜 홍명보 맞습니다" 라고 했고, 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없이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고 잘 생기셨다며 칭찬을 하셨다. 그리곤 2002년 월드컵 때를 마치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떠올리셨는지 "그때 진짜 잘하셨어,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하면서 자리를 안내하셨다. 그렇게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음식이 거의 다 나갔을 때쯤 어머니는 조용히 회무침 한 접시를 들고 진짜 홍명보 님이 있는 테이블로 가셨다. "아까는 내가 당황해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근데 다시 봐도 반갑네" 하곤 쿨하게 돌아오셨다.


식당을 하다 보면 힘들 때도 많지만, 이렇게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길 때면 '이런 게 사람 사는 거구나' 하며 한 번씩 웃는다. 그래서 예약 명부에 낯설고, 반가운 이름들이 꽉 찰 때면 없던 힘도 다시 솟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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