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정의

by 고작가

'코로나 19로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을까?’를 고심하기만도 벅찬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는 자꾸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95년 봄. 새내기 대학생이 됐을 땐 순수하게 ‘자유와 평등’이 정의였다. 선배들을 따라 데모란 것도 해 보고, 사회주의 서적도 돌려보며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부당한 것에 맞서는 집회에 참석하고 함께 목소리를 보태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대학 1학년을 보내고 군에 입대할 때도 내게 주어진 자유를 당당하게 누리기 위해 국방의 의무 또한 당연히 져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26개월 군 생활을 마치고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을 했다.


1998년 여름. 제대할 당시의 정의는 ‘노동’이었다. 제대를 하고 돌아온 집은 IMF 외환위기에 무너져 있었고, 입대 전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것이 사치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은 공중분해됐고, 가족이 살던 큰 평수의 아파트와 승용차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아버지는 중국으로, 어머니는 지방으로, 여동생은 학교 기숙사로 뿔뿔이 흩어졌고 아마도 그때부터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보단 당장 눈앞의 가족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공사장 잡일, 가이드 보조원, 발레파킹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오래 일했던 곳은 고속도로 휴게소다. 휴게소는 장소 특성상 평일은 한가하지만 금요일부터 주말은 가장 바쁘다. 그래서 주말 일당이 센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수업을 몰아 듣고 금요일 아침 일찍 천안 휴게소로 떠났다. 휴게소란 곳은 고속도로에서 연결되는 앞부분을 보면 깔끔하게 정돈돼 있지만, 대개 산이나 밭 능선, 외진 곳이 대부분이어서 마을을 통해 가는 교통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리는 방식으로 가곤 했는데, 그렇게 도착한 휴게소에서의 시간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지나갔다. 아침 7시 30분. 모든 직원들이 주차장에 모여 다 같이 국민체조를 했고, 소장님의 짧은 지침을 들은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일과를 시작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추웠던 곳. 다리가 아파도 제대로 앉을 수 없던 곳. 하지만 그런 휴게소는 나 같은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말고도 많은 청춘들과 IMF로 일자리를 잃은 어르신들의 소중한 일터였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는 IMF의 빚을 조기 상환했고, 떨어져 살던 가족들도 다시 함께 살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불과 5년이 지났을 뿐인데, 너무나 많은 일을 미리 겪어서일까, 아니면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 해서였을까. 서서히 ‘정의’란 단어가 이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느껴졌고, 그렇게 그 단어는 영원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정권이 바뀌는 걸 직접 겪으며 천 개의 촛불, 수 만 개의 촛불들이 가득했던 광화문 광장 집회가 열릴 때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때 다시 ‘무엇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걸까’ 물음표가 생겼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목놓아 불렀던 그곳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교복을 입고 나온 학생, 퇴근하자마자 온 직장인들이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잊고 있던 20대의 나, 자유와 평등, 정의로운 세상을 바랐던 나를 다시 조우했지만 이 역시 바쁜 일상 속에 또다시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이렇게 발 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자꾸만 잊힌 ‘정의’라는 그 단어가 왜 하필 요즘처럼 힘들 때, 또 생각나는 걸까? 일식집을 운영하며 자영업에 뛰어든 지도 어느덧 10년. 부모님이 맡으시던 때부터 치면 20년째 한 동네에서 장사를 하고 있고, 그동안 별의별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어떻게든 헤쳐나갔다.

‘김영란법’이나 ‘주 52시간 근무제’로 회식과 모임이 줄어들어 매출에 영향이 컸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하지만 2020년 1월, 예고 없이 나타난 코로나 19는 자영업자들에게 역대 최저 매출이라는 가벼운 전표를 안겨줬고 그동안 산전수전 함께 겪었던 직원들, 이웃 사장님들도 눈물을 머금고 떠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와 그들이 게을러서도, 음식 맛이 변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영업자들이 방치되는 현실을 보면서, 실체도 없는 그 무엇에게 자꾸만 화가 난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풍랑을 딛고 일어나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기에, 그래서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이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을 찾기 위해 평소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게 됐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책에서 공리주의,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행복을 제한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의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일까를 비판했다. 그 예로, 1884년에 있었던 미뇨넷호 식인사건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실제 조난당한 배에서 3명의 선원들이 생존하기 위해 어린 소년을 식인한 일로,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3명의 생존을 위해 1명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정의일까?


코로나 19로 인한 다수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영업의 영업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제한된 소수의 정의를 말해준다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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