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설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집 근처 전통시장엘 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시장 초입부터 많은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차례 음식 재료를 사기에 분주한 모습이이었다. 시장 안의 수많은 점포들 사이 유독 사람들이 길게 서 있는 곳. 전집 앞이다. 두부전, 동태전, 동그랑땡, 꼬치전 등 다양한 전들을 즉석에서 부쳐내기 무섭게 금방 팔려 나갔다. 우리 집도 몇 년 전부터 두부전과 동태전 외에 손이 많이 가는 전들을 조금씩 시장에서 사서 쓰고 있다.
4~5평 남짓한 작은 점포 안에 6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중엔 중.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여학생 2명도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들어보니 호칭이 모두 가족 사이다. 평소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반찬가게지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면 온 가족이 총출동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여학생들의 전 부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동그랑땡 모양을 잡아 밀가루를 묻혀주면, 언니로 보이는 친구가 달걀물에 담갔다 빠르게 기름 팬 위에 올려 능숙하게 전을 뒤집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는 재료 준비, 딸들은 전 부치기, 아빠는 포장까지... 온 가족이 척척 바쁜 일을 해내고 있었다.
이런 가족간 장사 팀워크는 내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동생과 내가 학생 시절부터 부모님께서는 식당업을 하셨기에, 우리는 가게가 바쁘면 항상 출동하는 5분 대기조이자 상비군이었다. 그리고 상비군이었던 나는 어쩌다 보니 지금 식당을 업으로 삼고 있다.
동생의 직업은 방송작가다. 일반적으로 작가라고 하면 박학다식하고 지식수준도 꽤 높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 동생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써 놓은 원고를 보면 어떻게 작가란 직업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동생의 또 다른 반전은 식당집 딸임에도 불구하고 요리실력이 꽝이라는 거다. 요리실력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신기하게도 음식 맛을 잘 못 본다. 음식 맛을 잘 못 봐서 요리가 늘지 않는 걸까... 그런 동생임에도 오빠 가게가 바쁠 때면 어김없이 달려와 급한 불을 꺼주고 쿨하게 돌아간다. 가게에 단체 도시락 주문이 들어오면 출근 전에 가게에 들러 포장을 도와주고, 가게 식구들 간식까지 챙겨준다. 직원이 갑자기 안 나올 때면 점심 식사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달려와 20~30분 가장 바쁜 시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20년 내공의 서빙 실력을 보여주고 쿨하게 회사로 돌아간다.
부모님께서 가게를 운영하실 때부터 해왔던 일이라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겼던 식당집 딸로서 상비군의 역할. 하지만 그녀 또한 본인의 일터에서 치열하게 일을 해야 하는 고된 직장인임을 나는 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은 모니터 앞에 앉아있기에 허리와 어깨는 이미 60대가 되었고,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이동하는 중에 차에서 주먹밥을 먹는 동생.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오빠’란 호칭을 듣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런 동생이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내게 ‘글쓰기’라는 과제를 던져줬다. 덕분에 요즘은 공모전에 내보거나 책을 출간하려는 원대한 목표도 꿈꿔 본다. 물론 처음 글을 써보는 나에겐 동생이 없었다면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지만, 나는 지금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