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올해도 김장을 담근다

by 고작가

대한민국의 최대 명절을 꼽으라면 설날과 추석일 것이고, 식당에서의 최대 이벤트는 단연 김장일 것이다.

영업집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 가게는 손님상에 나가는 김치를 직접 담근다. 특히나 연말에 담그는 김장 김치는 다음 해 봄 까지 쓸 수 있게 대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매년 11월 초가 되면, 10년째 거래해온 해남 배추 집에서 그해 쓸 배추 양과 받을 날짜를 확인하고 스케줄을 조율한다.

우리 가게는 보통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 3번에 나누어 20kg 절임배추를 30박스 정도 받는다. 한 박스에 평균 배추 7~8포기가 들어있으니까, 200포기 넘게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김장을 하는 집들은 알겠지만, 김장하는 날은 마치 잔치집과 비슷하다.

무, 갓, 파, 미나리 등 갖가지 야채를 준비하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찹쌀풀, 젓갈, 설탕, 조미료를 잘 배합해서 양념을 만들어 둔다.

여기까지 순조롭게 준비가 되었다면, 김장의 50% 정도는 된 것이다.

지금부터는 주방 식구들, 서빙 이모들을 포함한 가게의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깨끗이 절여진 배추에 양념을 골고루 발라주면 된다.

빨간 고무장갑으로 깔을 맞추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양념을 바르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올해 김치는 벌써 맛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의 고된 작업을 끝내고 나면, 김치 냉장고 한 대가 김치통으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 가게는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8시쯤 일찍 간판 불을 끄고, 함께 고생한 식구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절인 배추와 김치 속 양념을 따로 준비하고, 두툼한 삼겹살을 푸짐하게 삶아 먹기 좋게 썰어, 싱싱한 생굴과 함께 상에 올린다. 여기에 빠지면 서운한 막걸리도 넉넉히 준비해 둔다.

나는 이렇게 먹는 술상이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더 맛있다.

술을 못 드시는 이모들도 이날만큼은 막걸리 반 병 정도씩은 기분 좋게 마시고, 반주도 없는 가게에서 젓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고 돌아가며 애창곡 한 곡씩은 맛깔나게 뽑아준다.

비록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사랑하는 식구들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이 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렇게 10년 동안 나는 가게 식구들과 매년 겨울이면 행복한 김장을 담갔다.


2020년. 12월이 됐지만, 우리는 아직 절임배추를 주문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가을에 담가 두었던 무김치와 배추김치가 아직 남아있고, 처음 겪어보는 낯선 시간이라 김장을 얼마큼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니 김장을 할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12월 22일. 해남에서 출하하는 마지막 배추 8박스를 주문해 본다.

일 년간 가게 식구들도 반으로 줄어 나까지 둘러앉아도 4명이다.

똑같은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양념을 버무리는데 흥이 나질 않는다.

함께 고생한 식구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고, 막걸리도 함께 나눠 마셨지만,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득, 지금 담근 김치가 마지막 김장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년간 언제나 흥겹고, 행복했던 김장하는 날이 올해는 즐겁지 않았다.

우리는 내년 겨울엔 예전처럼 행복하게 김장을 담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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