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모두 보이는 맑은 날의 강정마을. 제주에서 날씨를 말할 때 한라산이 얼마나 보이냐에 따라 그날의 날씨를 가늠한다.
지붕을 개량하는 날에는 날씨를 꼭 체크한다. 바람이 심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지붕작업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 지붕개량할 집은 30년 된 단층 구옥 집으로 크레인을 부르지 않고, 기술자 두 분과 보조 작업자 두 명이 해야 한다.
올레길을 걸을 때 와본 적은 있었지만, 작업을 하러 온건 처음인 강정마을.
마을 입구부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보이긴 하지만, 동네가 시끄럽거나 어수선하지 않고, 조용하다.
현장일을 하러 서귀포 마을들을 다녀보면, 사람들이 다 어디 있는지 길에는 간혹 차가 다니거나 노인분들이 유모차를 앞세워 마실 다니는 것 외에는 사람 구경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다. 86세 되신 집주인 어르신이 작업 나온 우리를 반기신다.
그렇게 연장을 챙기고, 사다리를 놓고 지붕에 올라 용마루를 깨고 있으니 어르신께서 직접 커피를 타다 주신다.
86세 어르신이 타 주신 커피를 30년 된 집 지붕 위에 앉아 한라산을 보며 마시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서울에서는 진짜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닌가!
그렇게 지붕 위에서 얼마나 일을 했을까, 연장을 가지러 사다리로 내려가려니 언제부터 보고들 계셨는지 유모차를 줄 맞춰 파킹 시키시고, 우리를 올려다보며 담소를 나누고 계신 한 무리의 할머니 분들이 모여 계신다.
처음 뵌 분들이지만, 나도 모르게 90도로 인사를 드렸다. 여쭤보진 않았지반, 평균 연령이 80세는 확실히 넘어들 보이신다. 잘못한 게 없어도 자연스레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제주 사투리로 뭐라고 물으시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서, 마치 외국 어른 들게 하듯 ‘네, 네 감사합니다’ 하고 지붕으로 올라왔다.
대한민국이 큰 나라도 아닌데, 이렇게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오후에 같이 일하는 원주민 형님께 들으니, 이 집 큰아들 아무개가 지붕 해주는 게 맞느냐?, 지붕재는 무얼로 하느냐?, 비용은 얼마나 드느냐?, 우리 집도 손 볼 게 있는데 와서 한번 봐주라? 등 천천히 들어도 못 알아들을 말을 여러분이 한꺼번에 빠르게 물으시니, 제주 내려온 지 석 달 돼가는 내가 못 알아듣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제주는 집성촌은 아니어도 마을이 좁다 보니 이웃끼리 잘 알고, 자식들도 같이 키우다 보니 자기 집 드나들 듯 왕래도 잦고, 숟가락 개수를 알 정도로 참 허물이 없다.
지붕개량이나 페인트 작업을 하는 집에는 간혹 이렇게 어르신들이 모이시긴 하지만, 강정마을 어르신들이 심심하셨는지,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아무튼 점심식사 후 우리 사장님은 어르신들을 따라 이집저집 견적을 내러 다니시느라 지붕엔 한참 후에 올라오셨다.
사장님도 제주살이 10년 차 이시지만, 빠르게 말하는 제주말은 아직도 알아듣기 힘들다고 하는 걸 보면 앞으로 뵙게 되는 어르신들껜 정중히 육지 말로 해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관중들이 지켜봐 주시는 가운데 지붕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기분 좋게 돌아왔다.
나중에 강정마을에서 관심을 가져주신 어르신들이 연락을 주셔서 몇 차례 방문해 집을 고쳐 드렸다.
알고 보니, 제주에서 큰 효도선물 중 하나가 지붕개량이나 샤시 교체, 외벽 페인트 같은 집수리라고 한다.
아마도 그날 지붕개량을 본 마을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전화를 돌려 누구 집 아들 아무개는 지붕을 고쳐 줬다더라, 우리 집도 오래돼서 무얼 고쳐야 한다고 귀여운 협박(?)을 하셨나 보다.
졸지에 육지에 있는 자식들은 ‘여보, 올 겨울엔 아버님 댁에 보일러 바꿔 드려야겠어요?’
하며 예전 광고 패러디를 하고 있겠다고 생각이 드니 이 직업의 앞날이 밝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