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노가다 꾼이 되었다.

by 고작가

어쩌다 보니 일식집 사장으로 15년. 직장인들 보다야 조금은 자유롭게 살면서 하고 싶은 대로 눈치 안 보고 산다고들 보였겠지만, 자영업자들도 직장인들이 알지 못하는 고충이 많이 있다.

산전수전 겪으며 지낸 세월만큼 나름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일 년 반 나는 스스로 내 분신과도 같은 가게를 폐업했다.

가게를 정리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진 못했지만, 가게를 정리한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코로나를 겪으며 가게를 운영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희망 고문’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시지프스 삶의 연속이었다.

요즈음도 가끔 꿈에 보이곤 한다. 손님이 없는 빈 가게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직원들 눈을 피해 혼자 빈 방에서 불을 끄고 누워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내 모습을.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그럴수록 깊은 늪으로 빠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내리막 길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제주로 이주를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제주에서 내 삶이 가장 달라진 점은 서울에서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별생각 없이 살았다면, 제주에서의 하루는 매일 소중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바다에서 붉은빛을 뿜으며 올라오는 태양도, 새벽부터 잠을 깨워주는 새소리도, 창을 열면 시원하게 들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까지 오감이 저절로 열리는 아침의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페인트가 군데군데 묻은 작업복을 입고, 아직은 쌩쌩한 ‘감동이’를 타고 일출을 보며 출근하는 길도 마치 잘 그린 수채화 속을 달리는 것 같다.

가족들보다 2달 정도 먼저 내려와 제주에서 살 집과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나는 참 막막했다.

혼자였다면 시작도 하지 못했을 그 일을 나는 가족들의 힘으로 차근차근해 나갔다.

집을 구하는 것도 일자리를 찾는 것도 흘러가는 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 잘 된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발버둥 치기보다는 순리대로 흘러 가는 게 나을 때도 있는 거 같다.

40대 중반이 되어 내게 맞는 직업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 제주 내려올 때가 6월 이어서 햇빛 보며 땀 흘리고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식당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자연스레 식당이나 식재료를 다루는 일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게 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식으로 식당에서 일도 해보고, 배송일도 해보고, 농산물 취급하는 곳도 가서 단기 알바를 해왔다.

식당일이 자리도 많았고, 하던 일이라 경력도 인정해줘서 급여도 제일 좋은 편이었지만, 마음이 힘들었다.

내 가게가 아닌 낯선 주방에서 시키는 일만 하려니 답답함도 들고, 자존감도 떨어져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굳이 내 장사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낯선 제주까지 와서 식당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이 필요 없었다. 제주에서는 몸만 움직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지천에 있었다.

그렇게 구직 사이트를 보덕중,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고치는 일을 하는 곳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망치질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내가 무슨 용기로 면접을 보러 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면접을 보면서, 어쩌다 보니 처음 뵙는 사장님 내외 분들 앞에서 그동안 살아온 애기들을 나누게 되었고, 두 분 또한 육지에서 살다 10년 전쯤 제주에 와서 힘들게 자리 잡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현장일이란 게 어설프게 아는 거 보다는 열심히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과 함께 길게 가고 싶다는 사장님 말씀에 용기가 생겼다.

‘꿈은 이루어 진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햇빛보고 땀 흘리고 일하고 싶었던 나의 소망대로 나는 그렇게 노가다 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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