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by 고작가

둥근 보름달을 보며 출근하는 이른 새벽. 서울에서나 제주와 서도 새벽에 나가는 걸 보면 내 인생에 새벽잠은 없는 듯싶다.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기 위해 고급 SUV를 타고 달리던 서울의 아침 풍경 과는 다르게 오늘은 어느 현장으로 갈지 모르는 용역 사무실로 향하는 서귀포의 새벽 출근길도 똑같이 상쾌하다.

코로나가 터지고 1년 6개월 후, 나는 15년간 운영해온 나의 분신과도 같은 ‘미락 일식’을 폐업했다.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서귀포로 내려온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건설현장 노동자다.

처음 지내보는 제주의 여름과 가을. 난 참 많은 땀을 흘리며 현장일을 했다.

익숙한 칼과 프라이팬 대신 망치와 드릴을 들고 처음 해보는 현장일은 낯설고 힘들었다.

처음 써보는 낯선 연장이 익숙지 않아 갈비뼈가 골절되기도 하고, 무거운 돌에 발등을 찌어 발톱이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못 버틸 줄 알았던 시간을 두 세달 지내다 보니 어느덧 첫겨울이 왔다.

‘꽃보다 열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서귀포의 겨울. 눈에 보이는 건 귤나무가 휘어지게 매달린 주황색 귤과 도로 위를 점령한 귤을 나르는 트럭들로 온통 주황색의 향연이다.

11월까지 공사현장에서 맛있게 먹던 신선한 귤의 새콤달콤 함에 매료되어 물 대신 귤로 갈증을 풀었다.

12월 본격적인 귤 따는 철이 오자, 현장 일감이 줄고 출근 일수가 줄어든다. 줄어든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나가기 시작한 용역 사무실은 참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오늘은 어느 현장으로 갈지 모른 채, 돈을 벌기 위해 각자의 사정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의자에 몸을 기대고 대기하는 곳.

나는 이번 주 내내 귤 선과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일반 귤의 후속 과일인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이 물밀 듯이 지게차에 실려 끊임없이 들어오고, 그 엄청난 양의 귤을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부지런히 선별하는 곳.

한국말이 어색한 파키스탄 외국인들부터 육지에서 학비 벌러 내려온 대학생들. 제주에서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과 부업거리를 찾아 집을 나선 주부들까지 참 많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사불란 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다.

등 뒤에 산처럼 쌓인 귤 컨테이너들이 우리를 반기는 아침.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한다.

향기로운 귤 냄새를 흩으며 20kg 컨테이너 안의 귤을 쏟아주면, 일렬로 앉은 삼촌(나이가 많으신 아주머니)들은 크기별로 무게에 맞게 선별하여 예쁜 포장지로 포장하고, 박스에 담아 빠레트(화물 받침대)에 차곡차곡 쌓아준다. 라인 옆으로 어린 학생들이 귤 박스를 접고, 파치 귤을 정리하고 라인에 필요한 잡일을 도와준다.

짧게는 일일 차부터 길게는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들이 바퀴의 톱니처럼 맞물려 쉴 틈 없이 귤을 나르다 보면, 어제까지 맛있게 먹었던 귤이 무섭게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잠시 쉬면 귤의 공급이 멈추기 때문에 쉬지 않고 귤을 날라야 하는 고된 일에 허리와 어깨, 팔에 고통이 온다.

작업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나면서부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수가 줄어든다.

‘미깡 맛 좀 봐?’ 하며 귤을 건네는 삼촌들의 호의를 한사코 거절하며 쓴 블랙커피를 마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으로 배송되는 한 박스의 귤 상자를 만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참 많은 사람들이 귤과 하루 종일 사투를 벌이는 곳이 선과장이다.

휴가기간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서귀포에서의 추억들은 기억 속에서 잊힌 지 오래다. 서울에서의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달래주려 내려온 서귀포에서 나는 몸은 힘들어도 행복하게 첫 번째 귤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여 생활할 수 있는 건강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비록 환영해주는 이는 없었어도 앞으로 제주에서의 생활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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