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

by 고작가

동트기 전인 오전 6시쯤이면 어두운 작업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른 아침 바쁘게 출근하는 도시의 샐러리맨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사무실 바깥에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며 대기하고, 사무실 안에선 멍하니 무표정하게 소파에 앉은 사람들이 TV 뉴스를 보고 있다. 어림잡아 40~50명쯤은 돼 보인다.

처음 인력 사무소에 발을 들인 건 지난해 12월 초순이었다. 그 전까진 출근하는 사무실에 일이 많아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불고 본격적인 귤 수확철이 되자 거짓말처럼 일감이 줄어들었다. 궁여지책으로 발길을 돌린 곳이 이곳 인력 사무소다. 처음 ‘인력 사무소’란 곳을 찾았을 때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생의 막장을 표현하고자 할 때 등장시키던 장소. 그곳에 발을 내디뎠을 땐 절망감이 들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이런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망한 장사를 접고 내려왔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주저할 시간도 없었다. 처음엔 인력 사무소를 나가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점차 ‘도둑질이나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건강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일하는 건데,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력 사무소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30대부터 70대까지... 40대 중반인 나는 젊은 축에 속할 정도로 전반적인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다. 밝지 않은 형광등 불빛 아래, 낡은 작업복을 입은 험한 인상의 남자들이 수십 명 모여 있는 풍경은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오늘은 어느 현장으로 갈지도 모른 채, 소장의 호명이 있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그곳은 마치 신검을 마치고 훈련소로 들어가기 전 연병장에서 대기하던 논산의 풍경과도 비슷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대기하고 있으면 사무소 소장님이 인력이 필요한 현장으로 상황에 맞게 인원을 배치했다. 비 오는 날이나 일요일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전 7시쯤 현장으로 나갔는데 이런 걸 보면 소장의 일 수완이 좋은 건 확실해 보였다.

처음 사무소에 들어설 때의 두려움과는 달리, 현장에 나가 같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대개 순수하고 무척이나 열심히 살고 있었다. 육지에서 내려와 적당한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자리를 잡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온 이들부터, 취업 준비를 하며 틈틈이 용돈을 벌러 나오는 취준생, 주 5일 근무를 하지만 돈을 더 벌기 위해 쉬는 날 나오는 직장인, 또 퇴직 후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운동 삼아 나오는 어르신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일하러 나오는 곳이 바로 이곳 인력 사무소다.

물론 며칠 일하고 번 일당으로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보였지만 이런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고, 정직하게 몸을 써서 돈을 벌고 있었다. 매스컴으로 접한 이미지는 어둡고 칙칙했지만 직접 몸으로 겪으며 알게 된 인력 사무소는 인생의 막장 길이 아닌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소중한 일터였다.

귤 철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나는 다시 본업을 하느라 인력 사무소를 자주 못 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려 한다. 그곳에서 새벽마다 만나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땀 흘려 버는 돈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감사히 느낄 것이다.

keyword
이전 10화끊을 수 없는 그놈들 과의 질긴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