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 오는 날이면 글을 쓴다.

by 고작가

노가다 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비 오는 날이 곧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간혹 실내 작업을 하면 모를까, 대부분의 공사현장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일요일마다 쉬었지만 점점 하다 보니 현장일은 할 수 있을 때 해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서울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서귀포에서의 일상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조업을 나가지 못하는 배들이 항구에 발이 묶이고, 이런 날이면 공판장과 항구는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비 오는 날이면 공사현장뿐만 아니라, 농부들도 일손을 멈추고 드넓은 밭에 양분과 쉬는 시간을 준다. 해가 일찍 뜨는 하절기에는 일을 일찍 시작하고, 동절기에는 일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걸 보면, 서귀포에서의 삶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지게 되는 것 같다.

이주 초기엔 비 오는 날이면 뭘 할지 몰라 우울했다. 조금씩 자연에 적응하며 살다 보니 요즘은 비 오는 날이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어쩌다 가족들과 책을 출간하게 됐는데 그 이후 줄곧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글이 주는 치유의 능력도 경험해 보고, 혹시 모를 두 번째 출간 준비를 위해 글을 쓰고 있지만, 쓰면 쓸수록 내 글이 부끄러워 혼자만의 일기가 될 거란 생각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오다가 평생 하던 일을 어렵게 정리하고 제주로 와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평범하지 않아 이야기로 엮는 중이다.

서귀포의 비 오는 날은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창을 열면 오롯이 들리는 빗소리와 새소리. 구름에 가려져 더 웅장해 보이는 한라산과 슬퍼 보이는 바다. 이 모든 것들을 마주할 때면 모든 걱정과 근심이 씻겨 내린다. 비우면 다시 채우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비 오는 날이면 그렇게 마음의 짐을 비우고 다시 열심히 살 수 있는 준비를 해둔다. 이렇게 자연에게서 삶의 한 수를 배워서일까, 이제는 더 이상 비 오는 날이 우울하지 않다.

keyword
이전 08화서귀포 노가다 꾼이 좋은 101가지 이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