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그놈들 과의 질긴 인연

by 고작가

일식집 장사 경력 15년 차.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참 많은 생선들을 손질했다.

속을 잘 모르는 지인들은 매일 값비싼 회를 먹을 수 있다고들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일 년에 몇 번 먹지 않는 것이 생선회였다.

일식집을 정리하고 내려온 서귀포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살게 된 지금. 난 더 이상 생선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요즈음 일식집을 할 때 보다 훨씬 자주 생선을 먹는다.

집에서 5분 거리의 서귀포 항 공판장에는 매일 아침 조업 나갔던 배들이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서귀포 앞바닷 속에 있던 생선들을 다양하게 잡아 진열해 둔다.

진짜 좋은 물건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에 와 있다고들 알고 있지만, 신선하기로 따진다면 서울과 서귀포 항이 비교가 될 수 없다.

4지, 5지 크기의 은갈치부터 고등어, 샛돔, 옥돔, 까치복, 갑오징어 등 나무궤짝 안의 모든 생선들이 모두 최상의 횟감임을 눈으로 직접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더욱이 물건값이 서울의 절반 값인걸 알고 있는 전직 일식집 사장인 나로서는 생선을 사지 않고 오는 게 무척 힘든 일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싸고 좋은 물건을 샀을 때의 행복함에 중독되어 쉽게 쇼핑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싸고 좋은 생선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곤 한다.

제주에서 쉽게 잡지 않으려던 사시미 칼과 대비 칼을 나는 제주살이 석 달 차부터 심심치 않게 쓰고 있다.

서귀포 항에서 새섬을 이어주는 새연교 밑에는 어부들이 주낙으로 직접 잡은 자연산 활어를 어항에 두고 파는 인근 주민들만 아는 핫플레이스가 있다.

그곳 어항에는 5kg 이상 나가는 자연산 부시리와 참돔, 벤자리 같은 횟감을 쉽게 볼 수 있다.

가격은 노량진의 절반 값이고, 횟집과 비교하면 1/5 가격으로 신선한 자연산 횟감을 살 수 있다.

물론 정식 횟집이 아니기에, 손질은 직접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전직 일식집 사장에게 그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자연산 부시리를 kg당 만원씩 사서 두툼하게 썰어 김치를 얹어 밥반찬으로 먹는 서귀포 플렉스는 이제 흔한 일상이 되었다.

긴 세월 돈을 받고 생선을 손질해 팔아온 내가 장사를 접고, 내려온 서귀포에서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기 위해 정성껏 손질하는 걸 보면 그놈들과의 인연도 참 질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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