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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지붕을 잇는 남자들

계절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지붕개량 공사를 한다. 

아파트에서만 줄곧 살았던 나는 지붕의 존재를 잘 인식하지 않았다. 

우리 집 지붕은 윗집이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서귀포는 인구 밀도가 적은 지역으로 아파트보다는 주택에서 사는 도민들이 많다.

타운하우스나 별장 개념의 집들 말고는 조상들이 줄곧 살아온 오래된 주택들이 대부분이다. 

비가 많이 오는 특성상 주택의 지붕은 참 중요하고, 노후된 주택들은 대부분 지붕개량 공사를 한다. 

지붕의 넓이가 20평 미만의 작은 창고나 집은 사장님과 나 둘이서 공사를 하고

30평이 넘어가면 기술자들을 섭외해서 도움을 받는다. 

20~30년 된 설레트 지붕을 걷어내고 새로 상을 짜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존 지붕 위에 나무로 상을 새로 짜서 지붕재를 얹는 공법을 많이 쓴다. 

지붕재는 강철 재질의 칼라강판을 쓰거나 알루미늄 재질의 징크를 쓰기도 한다.      

지붕공사를 하는 날이면 지붕 위에서 5~6시간을 작업해야 하는데 

땅에서 일하는 현장보다는 훨씬 힘든 시간이다. 

처음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랐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려서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잘못 발을 디디면 지붕 밑으로 발이 빠지진 않을까, 

미끄러져서 지붕 밑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한발 움직이는 것도 무척이나 무서웠다. 

지금도 지붕을 오를 때면 긴장은 되지만 무섭거나 그때만큼 움직임이 힘들진 않다.      


공사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50mm 나무 다루끼를 지붕으로 올리고, 기존 지붕의 못자리에 맞추어 재단해서 고정을 시킨다. 

상이 다 완성되면, 하이다라는 절곡 된 강판으로 지붕재 밑의 앞면을 막아준다.

지붕재를 올려서 끝부분부터 덧되고 맞물려 상에 고정시킨다. 

그렇게 지붕이 얹어지면, 하오라는 절곡 된 강판으로 지붕의 모서리 부분을 막아준다. 

끝으로 용마루로 지붕의 꼭대기 부분을 덮어준다. 

물받이가 필요한 집은 지붕재를 얹기 전에 물고리를 고정시키고 물받이를 돌려준다.      


지붕공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 참을 구경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지붕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지붕을 덮어가는 과정이 신기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붕 위에서 보는 귤밭들과 한라산, 멀리 수평선까지 보이는 제주 바다는 

직접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광경이다.   

못 주머니를 차고, 지붕 위에서 무거운 연장들을 자유자재로 쓰는 지붕 위의 남자들을 보고 있으면 

같은 남자라도 멋있어 보인다. 

깨끗한 셔츠에 말끔한 슈트를 입은 멋쟁이 남자들보다 

낡은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땀 흘리며 일하는 지붕 위 남자들의 찐 매력.

서귀포를 다니면서 이집저집 지붕을 보면서 '내가 개량해 준 지붕이구나' 뿌듯한 마음이 들 때면 

노가다인 내 직업이 멋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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