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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D 종합건축. 고실장

서귀포시 효돈마을에 위치한 D 종합건축의 직원은 모두 셋이다. 

사장님, 사모님 그리고 나.


2년 전 제주에 내려와 일자리를 구할 때,

10년 넘게 지하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나에게 따사로운 진짜 햇빛을 쬐어주고 싶었다. 

식당일이 아닌 햇빛을 맞으며 땀 흘려 일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으로 

건축 사무실의 구인광고에 면접을 보았고 운 좋게 채용이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장일을 하는 작업자들도 스스로를 편하게 노가다라 부르고, 현장을 노가다 판이라 일컫는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게 부족한 사람들이 주로 일하는 곳이 노가다 판이라고 인식되는 사회에서 

나 또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노가다 판에서 직접 생활해 보니 맞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기도 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었다. 


사실 노가다 판에서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 

짧은 시간에 주어진 일을 뒤탈 없이 깔끔이 마감하면, 일 잘하는 사람이고, 능력 있는 기술자다.        

몸을 쓰는 일은 정직하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이두와 복근이 생기고, 몸이 단단해진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손가락 마디가 굵어진다. 

이렇게 일의 흔적이 몸에 기록으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경력이고 급여의 기준이 된다.      


사장님은 건축일에 경험이 많았고, 이일저일 가리지 않고 하는 편이지만

건축업자가 시공하는 신축현장에 하청일을 하러 들어가진 않는다. 

모든 현장이 그렇지 않지만, 건축업자들 일은 마감 때 공사비 지급이 매끄럽지 못할 때가 많다고들 한다. 

주로 개인 주택의 보수나 증축. 전체 리모델링을 주로 하는 우리는, 사장님 말고는 직함이 없었다. 

직원이 나 하나뿐이니 편하게 "K야~" 이름을 부르면 되고, 나는 "사장님, 사모님~"이라고 하면 된다. 

개인 집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주인과도 식사하는 자리가 잦아지고 

공사가 끝난 후에도 좁은 서귀포 안이다 보니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가 된다.

특히 서귀포에 집을 사두고 육지에서 생활하는 분들인 경우 자연스레 사무실에 부탁할 일이 생기다 보니 

손님인 집주인들이 밥을 사주며 "잘 좀 부탁한다"는 아쉬운 소리를 자주 하게 된다. 

일을 한지 일 년이 지나면서 동네 분들도 조금씩 알게 되고 집주인들도 알게 되면서

사모님이 명함을 만들자고 제안하셨다. 


직원이 세명인 사무실에서 명함에 넣을 직함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대로 '사장님',  직함이 없던 사모님은 '관리부장', 나는 '실장'.

평사원 하나 없고 간부만 있는 D 종합건축.     

사실 우리 사무실은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다. 

소주와 생선회를 좋아하시는 사장님 덕에 일주일에 2~3번은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고 

일이 없는 날에도 다른 약속이 없으면 사무실 식구들과 둘레길을 걷거나 바다수영을 하러 함께 다닌다.

사장님 작업복이나 신발을 살 때도 하나 더 사서 나에게 주니 자연스레 유니폼이 되었고 

일주일에 4~5일은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게 되니 자연스레 식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무실의 새 명함이 택배로 오고, 세 식구는 서로 직함을 불러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노가다 판이 험한 일을 하고, 몸을 쓰는 일이지만 

힘든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아껴주고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된 나의 운도 좋은 편이지만 

노가다란 직업이 평가절하된 사회의 잘못된 인식도 차츰 나아지리라 믿는다.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 듯, 집이 아프고 고장 나면 누군가는 고쳐주어야 한다.


그것이 노가다들이 하는 일이고, 우리 사회의 떳떳한 직업군이다. 

나는 어느덧 떳떳한 D건축 고실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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