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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내 인생의 두 스승

나이 50세를 가리켜 ‘지천명’이라 한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세상 만물의 원리도 안다는 뜻인데, 내 나이가 어느덧 50세를 바라보고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생각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용기의 부족일까?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면서 식당을 운영하게 된 세월이 15년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40대가 되었을 땐 식당업 말고는 다른 걸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코로나를 버티고 지금까지 식당을 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식당을 운영할 때 사실 사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나를 이끌어 주고 음식을 준비한 것은 ‘고실장’님의 역할이 컸었다. 

부모님 연배의 실장님은 아들 뻘의 사장인 내 옆에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함께 하셨다. 

나는 그분께 식당일 외에도 오랜 세월 근면 성실하게 살아온 한국 아버지의 인생을 배웠다. 

70세를 훌쩍 넘기면서도 일식당 주방에서 현역으로 일하시는 실장님은 계절이 바뀔 때면 연락을 주신다. 

‘낯선 곳에서 힘든 일하고 있지만 열심히 살다 보면 길이 열린다고, 몸 관리 잘하고 어머니 잘 모시라'는 

실장님의 짧은 통화에서 그분의 모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가게를 폐업하고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 중 하나가 실장님과 헤어지는 일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함께한 스승과 헤어져 내려온 제주에서 나는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났다.      

40대 중반의 나이. 노가다 경험도 없었고, 건강해 보이지도 않았던 나를 흔쾌히 받아주셨던 정 사장님.

그분과 함께 일한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학창 시절부터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몸을 쓰는 게 좋았다는 우리 사장님은 

젊은 시절부터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을 두루 섭렵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집 짓는 일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10년 전 서귀포로 내려와 집 고치는 일을 하고 계신다. 

연장 이름도 모르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망치질부터  전동공구 쓰는 법, 치수 재는 법, 

작업할 때 내 몸을 보호하는 법까지. 

노가다 유치원생을 끈기있게 지도해 주고 계신 고마운 스승님이시다. 

집에 관련된 모든 공정을 직접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자만하지 않고

지금도 유튜브를 보면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한다는 진정한 노가다 꾼이다. 

노후 준비를 충분히 해 놓았지만, 일하는 게 재밌다는 그분은 

60대 중반인 지금도 현장에서는 젊은 일꾼들 못지않게 일을 하신다. 

내가 빨리 배워야 편한 마음으로 은퇴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지만

그 농담 끝에 진심이 담긴 건 마음으로 알 수 있다.      

여태껏 살아온 길을 후회할 필요 없다고, 

앞으로 사는 동안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용기를 전해주는 따뜻한 사람.

위험한 공정 앞에서 아직까진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앞장서서 나가는 멋진 상남자. 

나는 그분께 인생의 2번째 삶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서울에 계신 고실장님이 제주에 오시면 우리 세 남자는 함께 소주를 한 잔 할 것이다. 

두 분이 아껴주신 사람이 이 곳 서귀포에서 실패한 인생이 아닌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꼭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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