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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오병이어의 기적

서귀포시 효돈에 얻은 마당집에는 한 울타리 안 세 가족이 모여 산다. 

안채에는 서울에서 내려오신 엄마 친구분과 할머니, 

바깥채에는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와 버스를 몰고 농사를 짓는 J형님,

그리고 나머지 한 채가 우리가 구한 민박집이다. 

간혹 육지에서 한번씩 지인들이 내려오긴 하지만 비어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주말에 한 번씩 가서 지내고, 

가끔 지인들과 술자리가 있으면 효돈집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기도 한다.      


완연한 가을 날씨의 오후. 

J형님은 버스 운행을, 나는 현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각자의 차에서 인사를 나눴다. 


"형님, 일찍 끝나면 저녁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게요?"


지나가는 말로 뱉은 말에 형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자며 화답했다. 

J형님은 동네의 마당발로 운행이 없는 날이면 동료, 선후배뿐 아니라 육지에서 내려온 지인까지 

집으로 불러 마당에서 고기를 굽거나 집안에서 회를 먹기를 수시로 하는 동네의 인싸였다. 

몇 번이나 J형님에게 얻어먹기만 했던 나는 삼겹살과 목살을 사고 소주 3병과 맥주를 샀다. 

쌈 채소는 텃밭에 있으니 즉석에서 따서 물에 씻으면 된다. 

그렇게 소소한 술상이 차려지고, 사무실 사장님을 모셨다. 

원래는 3~4명이 모여서 소주 한잔 하자는 계획이었는데

해 질 녘 술시가 되자 효돈집 마당으로 술꾼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J형님의 단짝 N누나, 안채의 아줌마와 할머니, J형님의 동료 버스기사 분들, 

마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자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네 형님까지.

간단히 고기나 구워 먹자고 던진 말이었는데, 10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고기는 당연히 부족했고, 불판과 양념. 쌈채소와 앉을자리도 없었다. 


이때부터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됐다.     

J형님의 집에서 접이식 식탁과 불판을 내오고, 

N누나는 냉장고에서 맛이 들어가는 고사리, 머위잎 등으로 만든 장아찌와 육지에서 공수해 온 묵은 김치를,

안채에서는 냉장고에 있던 고기와 각종 양념장을, 

동네 형님은 냉동고에서 잠자고 있던 직접 잡은 무늬 오징어를, 

버스기사 형님들은 마트에서 소주, 음료수와 마른안주를 사 오셨다.

예상치 못했던 손님들로 당황해하던 순간도 잠시. 

10여 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잔칫상이 순식간에 차려졌다. 

얼굴만 알고 서로 이름도 알지 못했던 형님들과도 통성명을 나누고 너무도 익숙하게 소주잔을 돌린다. 

어느 맛집에서 구워 먹는 고기보다 맛있고, 술도 달았다. 

우울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모두들 오늘의 즐거웠던 일상을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모자란다. 

배도 부르고 취기가 살짝 오를 때쯤 누가 준비했는지 구수한 된장찌개와 따뜻한 밥이 차려진다. 

시골집 마당에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된장찌개의 맛이 그렇게 좋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사전 시간 약속도 인원도 정하지 않았던 그날의 고기 파티는 

10명여 명의 술꾼들이 배를 두드리며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며 박수와 함께 마무리 됐다. 


이런 게 시골 마당집의 매력일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나는 그 후로 고기는 식당에서 사 먹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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