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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효돈집 이야기

내가 일하는 직장은 서귀포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효돈 마을에 있다. 

서귀포 내에서도 귤이 맛있다고 소문난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동네.

너무 외지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시골생활을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는 조용한 동네다.     

육지에서 이주한 두 번째 해에 우리 가족은 효돈 마을에 작은 농가주택 하나를 연세로 얻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이모가 암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셨고, 딸 같이 아끼던 엄마와 우리가 사는 서귀포에서 요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얻었다. 

마침 그 집은 비어있던 집이었고, 사람이 살지 않던 창고로 쓰는 집을 우리 사무실에서 고쳐준 집이라 주인분이 싸게 내어 주시기도 했다.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앞마당과 귤밭이 있는 시골집은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이모가 얼른 회복하셔서 내려오실 날을 기다리며 시간 날 때마다 효돈집에 가서 청소도 하고 집을 꾸몄다. 

서울에서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보니, 가전제품은 필요한 만큼 중고 장터에서 구입하고, 커튼과 소품들도 5일 장에 나가 사다가 수선해서 달고 배치했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공들인 덕분일까, 낡은 창고였던 효돈집은 블로그에 올라온 예쁜 숙박업소 같이 제법 감성 있는 민박집처럼 보였다. 

이모의 빠른 회복을 바라며,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효돈집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밤이면 옥상에 올라가 별도 보면서 자고 오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수술을 끝낸 이모는 좀처럼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셨고 1년을 힘들게 고생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렇게 효돈집은 육지에서 온 지인들이 내려올 때면, 편히 쉬었다 가는 민박집이 되었고,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나는 마당 한편에 작은 텃밭을 일구어 드렸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엄마는 이틀에 한 번은 마당에 들러 상추, 고추, 오이 같은 작물을 가꾸고, 마당의 화초에 물도 주면서 꿈꾸던 시골 생활을 즐기신다. 

비록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이 시장에서 파는 것과 비교할 순 없지만, 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이라고, 첫 농사 치고는 만족한다고 자평하시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지금도 병솔 꽃이 예쁘게 핀 효돈집에 가면,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우리 가족을 아껴 주셨던 그녀가 그립다. 

이모가 함께 계셨다면, 이 효돈집 마당이 더 예뻐졌을 텐데.

‘이모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걱정은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이모 너무 보고 싶어요’

‘이모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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