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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화양연화

서울에서 보냈던 마지막 겨울. 

운영하던 가게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든 겨울이었다. 

그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가족과 함께 한 ‘삼인용 식탁’이라는 글 쓰는 작업 덕분이었다. 

난생 처음 글을 써 보았고, 가족들과 각자 쓴 글을 공유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맞춰가는, 

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들이 그 겨울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결과물인 ‘삼인용 식탁’이 1쇄에서 끝난 아쉬움은 있지만 

글 작업하는 넉달 동안의 시간은 제주로 내려올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제주에 내려와 안정을 찾아가면서 틈틈이 기록하고 있는 나의 두 번째 생의 시간.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3년이 지났을 뿐인데, 너무도 달라진 우리 가족의 삶이 스스로도 믿기질 않는다. 

매일 늦은 저녁, 지친 몸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 두려워 소주 한잔으로 풀어야 했던 일상은 

이제 낮에는 땀 흘려 일하고, 이른 저녁 가족들과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몸을 식히는 일상으로 바꿨다.

웃음기 전혀 없던 가족들의 얼굴에선 ‘행복’이라는 아름다운 열매가 보이고, 

기계처럼 움직이던 몸뚱이에는 활력이 붙었다.  

‘가진 건 없어도 행복하다’란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물질만능주의적인 가치의 척도는 ‘행복은 물질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제주에서의 기록은 ‘행복’ 과 '감사'라는 단어로 가득차 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서울에서의 내 삶과는 너무도 다른 삶이다.      

서귀포의 산과 바다가 주는 행복감, 현장일을 하면서 흘리는 땀과 그 땀과 비례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

내가 좋아하게 된 제주의 곳곳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주는 튼튼한 두 다리까지.

이 모든 것이 나에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금의 행복이다.      


서울에서의 삶이 ‘그냥 사는구나’ 였다면, 서귀포에서의 삶은 ‘이게 사는 거구나’라고 매 순간 느낀다. 

50년 가까이 살면서 여태 내 삶이, 내 주변이, 나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자랑스럽고 뿌듯한 적이 있었던가?

제주에서의 시간은,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들과 얻게 되는 것이 또 다른 결과물이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살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든 시간도 있지만 

그 시간을 넘기고 나면 인생의 화양연화도 올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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