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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야기

by 고작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도서관을 찾은 일이 거의 없었다.

중. 고등학생 때 뿐만 아니라 대학생이 되어서도 도서관은 시험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나

영어 공부를 하는 곳으로 잘못 인식되어서일까?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보기 위해 가본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서귀포의 공공 도서관은 10개 정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집 근처의 '삼매봉 도서관'과 '동부 도서관'이다.

두 곳 모두 꽤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고, 푸른 바다와 녹음을 모두 볼 수 있는 훌륭한 뷰 맛집이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창가 쪽에 앉아 밖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직업 특성상 비가 오는 날에만 주로 도서관을 이용해서일까?

조용한 공간에서 듣는 빗소리와 새소리의 하모니는 어떠한 음악 보다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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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는 바로 책 냄새다.

현장에서 일할 때의 흙냄새, 풀냄새나 쇳가루 냄새, 땀냄새와는 전혀 다른

책 고유의 냄새는 조용한 도서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학생 때의 의무감이나 압박감이 전혀 없이

온전히 내가 좋아서 자주 찾는 도서관은 50세를 바라보는 중년남성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었다.


읽고 싶었던 소설이나 에세이물이 가득하고, 맛있고 가성비 좋은 음식을 파는 식당까지 있으니

비 오는 날에 도서관만큼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책을 읽으며 틈틈이 이렇게 글을 써 보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복귀해본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다’란 글귀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현장 일 대부분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보니

가끔은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평생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살았던 동생은 제주에 내려와 길을 걷는 일을 찾은 걸 보면

글 쓰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싶다.

어떤 일이든 직업이 되는 순간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나이가 서글프기도 하다.


몸 쓰는 일을 하는 노가다꾼이 비 오는 날이면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이 또한 서귀포 삶의 또 다른 여유가 아닐까?

땀 흘리며 일하고, 글 쓰는 노가다 꾼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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