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하루가 너무 빠르다. 주말은 원래 짧았으니 그렇다 치고, 위크데이마저도 순삭이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1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낸다. 일, 점심, 잠깐의 휴식, 그리고 또 업무. 집에 돌아오면 대략 7시가 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가 이를테면 ‘자유시간’ 이건만... 사실 이마저도 온전치 않다. 어떤 날엔 설거지, 어떤 날엔 빨래, 아니면 청소나 아이 숙제 봐주기 등등...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기 때문.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운동도 해야지. 에헤라 디야,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남는 건 하루에 한 시간뿐이다.
하지만 이토록 소중한 '하루 한 시간'이 유튜브 릴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웹툰에 점령당했음을 고백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짐작할 수 없으므로 이것은 분명 시나브로 진행된 일이다. 결과론적으로 그렇다. 밥 먹고 머리를 베개에 대는 순간, 게임 끝이다. 핑계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지. 회사 일이 너무 빡세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도 괜찮은 변명이 되겠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이건 나름대로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속하는 거 아닌가? 나만 그런겨?
꽃 중의 꽃 자기합리화를 열심히 피워 봐도 소용없다. 여러 가지 사유를 들어 나의 게으름을 정당한 행위로 만들면 뭐 하나. 내가 기운이 없는데. 거울 속 중년의 모습이 마치 오랫동안 방치돼 타이어 바람이 다 빠져 버린 자전거를 보는 것 같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아무 생각도 없이' 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요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궤변이라기보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는 자기 모습이 스리슬쩍 보이기 시작했다는 고백이다. 어느덧 사십오. 내 남은 인생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각 잡고 앉아 최근 나의 생활을 돌이켜보니, 그래도 뭔가 하긴 했다. 회사 일은 빼고... 일단 탁구를 열심히 쳤다. ㅋㅋㅋ (이게 1빠로 나오다니) 몇몇 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승급도 했다. 여전히 하위 부수라는 건 안 비밀이다. 요즘 일이 바빠 잠시 레슨을 쉬고 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라켓을 휘두르며 땀을 뺀다. 즐거움이 커질수록 챙겨야 할 눈칫밥도 늘어나는 건 부수적인 반작용이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아들 녀석과 산에 오른다. 사실 아직 한 번밖에 못 갔다. 광교산 정복(?) 후 다음 목적지를 도봉산으로 잡았는데 이 좌식이 친구랑 약속을 잡으시는 바람에 무산되었음을 밝힌다. 돌아오는 주말에 청계산으로 방향을 틀어 보련다. 아니면 큰맘 먹고 월악산 도전?ㅋ 산에 가지 않는 날엔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이나 탄천을 달린다. 한강까지 가보자는 걸 말리느라 애먹었다. 얘, 가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못 와...
평일 저녁 시간엔 가끔 미국 주식 창을 기웃거린다. 없는 돈 끌어다가 몇몇 종목을 담아놨는데, 모아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하락장에 서리를 맞고 정신을 못 차리기도... 이보다 더 화딱지 나는 건 역시 내가 팔면 오른다는 주식시장 만고불변의 진리다. 꾹 참고 버티며 한 주 한 주 쌓아가는 것이 현자의 투자일지니... 하지만 나약한 마음의 소유자는 매일 매 순간 눈앞의 파란색에 매도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심하고 있다. 귀도 얇아, 마음도 얇아, 머리카락도 얇... 아, 이건 안된다규!
써놓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생각'이란 걸 하고 있었다! 틈틈이 체력을 길렀고, 가족 간 우애를 다졌으며, 가정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하였으니... 이 정도면 못해도 50점은 넘으렸다.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무기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산다는 건 무엇일까? 인생이란 결국 하루의 집합체일 텐데, 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그걸 알지 못하니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밖에. 목표가 없으니 방향이 없고, 방향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스스로 벽을 만들어 놓고 꿈쩍도 안 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수우미양가'의 '미' 정도로만 살아보자 다짐했었다. 무기력에 허우적거리던 지난 2년의 세월, 그래도 50점은 하고 있었으니 이제 20점만 채워 보련다. 쉬운 것부터, 가벼운 것부터 하나씩 하다 보면 절반쯤 풀린 눈꺼풀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을까. 무거워진 궁둥이부터 들어 올려야겠다.
자! 뭐라도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