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할 거라고는 내 의식 속에는 없었다 손위시누이가 시어머니와 합치면 너도 일해야지 뭐 할 거냐고 했을 때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도 마음은 바로 복종모드로 돌았다 시집식구의 말이 아닌가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사람은 생존본능에 적응의 동물 그 대표적인 예가 나 인 것 같다
우리 엄마말을 그렇게 잘 들었으면 내형제에게 그렇게 정성을 다했으면 나의 인생은 진작에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자기 생각이 없어질 수 있었는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할 말이 없다 어이가 없어서 ㅡ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세뇌한 단순세포
복지관에서 미싱자수를 무료수강 하는 걸 보고 배우러 다녔다 한참 이쁜 어린 아들을 집주인아줌마에게 가끔씩 맡겼었다 사실 그게 반강제였다 아무리 아기를 이뻐하고 귀여워도 남의 아기를 서너 시간 봐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어이없는 부탁을 아줌마는 들어주셨었다
한 집에서 시동생과시누이들과 사연 많게 살고 있는 부산얼뜨기새댁의 사정을 아는 집주인아줌마는 내치지 못하셨을 거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형제들이 유일하게 남편에게 잘한 게 그 집의 방을 얻어 놓은 것이니 고마워해야 하나??
방의 구조가 방하나를 통로처럼 지나는 구조여서 어떻게 이런 구조의 방을 얻어 놓았을까 원망스러웠지만 집주인아줌마도 신혼부부가 시동생들과 살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나는 틈만 나면 이사가자했고 남편은 그때마다 계약기간이 있다 이런 주인 또 없다 하면서 미루고 미루고 삼 년을 살았다
이사를 했어도 오랫동안 주인아줌마의 도움을 받았다
남편의 월급날은 아줌마에게 빌린 돈 갚는 날로 살고 있어도 그 당시 차를 살 때도 필요했던 보증인은 정말 힘든 부탁인데도 선뜻 인감도장을 내어 주셨고 집주인 들만하는 계모임도 들어주어 목돈 만드는데 너무나 큰 도움을 주신 은인이시다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 안부전화만으로 감사함을 표하는데 여전히 걱정해 주시는 친정엄마 같은 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이 어려운 중에도 숨구멍이 있고 그 숨통이 처음 서울서의 집주인아줌마이셨던 거다
그렇게 기술을 배웠지만 십 년 뒤 아파트로 이사 가서야 써먹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애는 못 본다고 하셨다 당신의 자식들 키우느라 힘든 고생 다했는데 또 애를 보는 건 못한다 하셨다 집안 일도 이제 못한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동네에 있는 작은 공장으로 일 다니셨다
정작 손 많이 가고 일 많고 말썽 많은 이들은 다 큰 당신의 아이들이었는데
어쩌면 나는 시어머니의 최적화된 일군이었다
속이 불편하다고 소화제로 견디다 장남을 결혼시키고 간 병원에서 시아버님은 췌장암말기로 시골집에서 몇 개월간 사셨는데 시어머니는 병시중 혼자 힘들다고 출산 한지 두 달도 안된 나를 ㅡ며느리를 불렀다 그리고 당신은 종일 밭에서 일한다고 새참 나르게 했다
모유수유를 하는데 젖몸살이 잦았다
그러면 막걸리 한 사발에 사기그릇조각을 넣고 마시라고 했다 젖이 돈다면서
그ㅡ러네 나도 시어머니에게 받아먹은 게 있긴 있었네
젖을 먹이니 아이를 위해서도 뭐든 먹고 싶었다
그런데 숟가락 들 힘도 없다고 늘어져 계시는데 먹을 수가 없었다
첫째 시누이 결혼식 전 함 들어오는 날, 나는 내 아이를 업고 돈봉투를 준비하면서 함진아비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시어머니는 그녀의 자식들과 행복한 순간들을 보냈었다
그때 그들은 행복의 복바가지를 타고 있었다
문 밖에서는 바가지 긁는 소리가 진동음으로 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