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사유

by 나르는꿈

시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신 지 해가 바뀌고 구 개월이 되어간다,

해가 바뀐 것에 놀라고 십 개월도 되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고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

일터로 나갈 때의 분주함도 없고 돌아왔을 때의 바둥거림도 없다,

삼시 세끼의 굴레에서 벗어나 느지막한 첫끼로 시작해 외식으로 마무리할 때면 왠지 주위의 눈치가 보이고 낯뜨거움이 있어야 될 거 같은데 그렇게 살았던 듯이 자연스럽다 ㅡ낯짝이 두꺼워진 걸까?


결혼 10년 되던 해에 청약당첨으로 아파트에 살게 됐다.

살던 주택가 와는 멀리 떨어진 다른 구의 신축아파트단지 적응하기 전까지는 사교성 좋은 시어머니도 집에만 있었다 갈 데가 없었다

24평형이지만 실평수가 18평이다

행동반경이 넓을 수가 없다

처음 내 집마련의 새 아파트에서 그 기분을 느끼고 누리는 여유를 가지는 데는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생각해 보니 아파트입주 전에 벽지와 싱크대 색을 결정할 때 모든 게 시어머니 위주였었다 푸른색보다는 미색을 더 좋아하시겠다고ㅡ

누릴 실 이유가 있었다

한집에 멀쩡한 여자 둘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직장생활은 처음엔 혼자만의 눈물바람이었다

퇴근하고는 11층 집 앞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꼭대기 층까지 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음을 추슬러서 집으로 들어갔었다

그냥 좀 그랬었다

문 열고 들어서면 시계를 보고 나를 보는 시어머니를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다가 온 사람처럼 고개 숙이고 저녁준비를 한다

서러움 같은 게 있었다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듯이 시어머니가 친정엄마가 될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도 시어머니였다

처방받아 복용하던 혈압약의 부작용으로 아침이면 맥없이 가라앉아 신경 쓰이게 하더니 모두가 출근하고 없던 날 그 증상이 나타나 이웃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가셨다 신체 아무 이상 없음을 검진해서 확인했다

혈압약을 바꾸니 그 증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남편은 집에서 시어머니를 돌보기를 원했다

그렇게 전업주부가 되는 듯했지만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작에 회사를 그만두고 용달차를 사서 일하던 남편은 이벤트업체와 연결되어 주로 야간작업이 많았다


이건 정말 원하지 않는 그림이었다

인생의 설계가 없었지만 이것만은 아니었다


나의 삼시세끼의 주업과 남편과의 부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을 다시 시작해도 남편과의 동업은 아니었다

그건 꿈에도 없던 일이었다

남편이 아쉬웠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 ㅡ

그러나 지금은 아닌데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생업이니까


내 인생의 중요 부분의 결정이 그렇게 그분 위주로 살았는데 그분은 깔끔하게 아프다고 모든 걸 내려놓으셨는데 남은 나는 너무 이상하다

정말 결론이 이게 아니었다


형제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남편이다

시어머니 치매발병 이후로 서서히 ㅡ

지금은 모두가 소원해졌다

그중 언덕이 되어주려고 최선을 다한 하나 있는 시동생이 더 멀리 멀어져 있다

시어머니가 떠난 이 집에 그들은 더더욱 오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감정으로 남편이 안쓰럽다

애초에 나를 의식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데 이제 와서 나의 친절을 들먹이며 아비 같은 형을, 오빠를 외롭게 보이게 한다는 게 용서가 안된다

이제는 내가 거부하는 남편의 형제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ㅡ이제 우리 그만하자 나 이제 자격 없어ㅡ


대박이는 난감하고

쪽박이는 박을 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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