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하늘

by 나르는꿈

짙은 코발트빛 하늘색이 좋다고 하니 우리 엄마가 애가 많다고ㅡ걱정하셨었다.

엄마가 가신지 햇수로 이십 년이 넘어간다.

큰딸을 보며 내 엄마는 얼마나 더 애가 탔을까.


ㅡ여보ㅡ

요즘 남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보통은 이름 끝자에 희야라고 부르는데 요즈음 들어 여보라고 더 자주 부른다.

듣는 순간은 잠시 , '왜 저래?'하고 슬쩍 닭살이 돋는다

예전에 이름 부르는 걸 듣고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셨었다 체신머리 없다고ㅡ

그렇게 말하는데 약간의 샘? 같은 게 느껴졌었다.

나의 느낌으로

부부사이가 좋아 보여도 조심스러운 적이 있었다.

마누라 치마폭에 싸여 줏대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이좋은 것도 눈치를 볼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름 부르는 게 나는 좋았다 지금도,

여보라는 단어는 쓰는 것조차 오글거리는 단어이다.


규칙적인 출퇴근이 없는 남편은 일이 없을 때는 완전 집돌이이다.

결혼하고 처음 부산에서 오 개월 살았을 때도 방학이라고 고등학교 다니던 시동생이 한 달 동안 와 있었고 시누이들이 다니러 왔고 큰누이의 딸이 주말이면 와서 자고 갔다 .

그래도 그 오 개월의 둘만의 공간을 빼고는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남편과 단둘이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이 없다.

시어머니와 있을 때는 눕거나 낮잠 자는 호사는 못 누려도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었는데 지금 남편과 둘이 남게 되니 세상 불편하다.

집안일하지 않을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실에서 뉴스프로를 틀어 놓고 있는 남편옆에 앉아 책을 보는 것도 집중이 안되고 혼자 방에 들어가 있는 것도 불편하다.

다 포기하고 같이 티브이 시청하는 것도 싫다

뉴스프로라 더 싫다 .

일을 할 때 외에는 남편과 한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ㅡ하고 방으로 들어와 읽던 책을 펼쳐도 제자리걸음이다 신경이 거실로 향한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을까?

슬쩍 나가서 뭐 해줘요? 하고 실없이 묻는다.

나에게 집중할 수가 없다.


육십 환갑만 지나도 상노인으로 여겼었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대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지금 나는 육십을 훌쩍 넘어 칠십을 바라보고 있는데

백세시대라고 노인 측에도 못 들고 중년축에도 못 끼는

뉴스에서나 고령층으로 언급하는 애매한 처지

이 나이 즈음이면 남편과 나란히 석양을 바라보며 같이 물들어가는 외롭지 않은 마지막 날들을 꿈꿨었다.

내가 결혼을 생각한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당신의 형제들에게 물 한잔 건넬 마음도 없어졌다 당신의 혈육이고 자식처럼 뒷바라지한 동생들이지 않은가 형제들이 멀어져도 상관없었으면 그렇게 안 살았다 .

사는 동안 하자는 대로 따르며 살았다.

이제는 할 것도 없겠지만 내가 싫다.

내 탓은 내가 하는 거지 시집식구들이 할 말은 아니다.

나는 그만 보고 그만 듣고 싶다고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한다.


나는 불편하다.

요양원으로 시어머니를 면회 가는 날은 목줄에 끌려가는 강아지가 되는 기분이다.

함께 산 시간들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거부반응이 인다는 게 나로서도 괴롭다.

남편과시어머니는 천륜이 아닌가

남편의 형제들을 배척하면서 남편과 함께 산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안된다.

나의 이혼요구에 남편은 그저 먼 산이다.


결혼은 내가 원해서 되었는데 ᆢ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 하나가 둘로 나뉘는 데는 얼마만큼의 조건들이 더 있어야 되는 걸까


이혼이라는 단어는 여보라는 단어만큼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이제 나는 편하고 싶다 몸만큼 마음까지

내 마음 편하자고 고집을 부리려니 곁가지들이 아른거린다.

제 몫을 충분히 살고 있는 나의 아들들이 아니다.

거실에 혼자 앉아 뉴스프로 틀어놓고 휴대폰으로 하나만 아는 게임을 몇 년째하고 있는 놀 줄 모르는

남의 아들.

남의 편.

남편.


대박은 대박인데 너무 외로운 왕따 같다.

이건 연민인가, 동정인가, 동병상련인가,


방황하던 청춘에 남편을 만나고 의지하고 살았다.

어쩌면 나도 은연중에 대가를 바라고 살았을 것이다.

맞다, 그랬다,

어느 시점에서는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시간을 평화롭게 맞이하지 못한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 자신을 방치한 탓일까

부딪치는 게 무서워 고개 숙인 탓일까


자신이 쪽박이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는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쪽빛하늘을 보며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남편은 여전히 티브이를 틀어놓고 게임 중이다.


쪽빛하늘에는 자유로운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