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정 위반-일방적 개헌>
<협정 위반-일방적 개헌>
녀석은 이런 전화 대화를 이후로 계약 위반성 발언이 상당히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야, 우리 그냥 이제 우정을 깨고 남들처럼 사귀는 게 어때?”
“미쳤구나?”
“미치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이 더 미친 짓이거든.”
“우리가 뭐 어쨌길래?”
“말이사 바른말로 너랑 나랑 이렇게 맨날 같이 쏘다니고 떠들면서 그냥 친구라고 하면 누가 믿냐?”
“우리만 아니면 되는 거지.”
“우리 라니? 솔직히 사실 난 꽤 오래전부터 너랑 친구 이상이라고 생각하거든? 난 정상이고 싶으니까.”
“정상 이라니? 누가 학생 신분에 더 정상적이냐? 이런 걸 대비해서 우리가 계약이라는 걸 만들고 동의라는 걸 한 거지. 안 그래? 그리고 난 그걸 충실히 지키고 싶다. 그게 우리를 믿어주시는 부모님께 대한 보답이라 생각해.”
“그래.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린 그렇게 어리지 않아. 이십 대 삼십 대가 돼도 우리처럼 철들긴 쉽지 않거든?”
“나이 들어도 우리보다 어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게 우리가 다 컸다고 생각지도 않아. 이런 경솔한 행동만 봐도 아직 어린 거지. 넌 지금 우리의 우정에 도대체 뭐가 불만인 거지?”
“불만은 없어. 다만 좀 아쉽달까? 언제부터인가 내가 너의 많은 친구 중 하나이긴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르지. 혹시 너도 같은 생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 보기도 하고.”
“아니. 난 지금에 만족한다. 그리고 너도 정신 차려. 우린 둘 다 독신 주의자들 이라고. 네 헌법 1조 3항!”
“풋. 인마, 내가 그거 깬 지가 언젠데.”
“뭐?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헌을 했다고? 그 중요한 법을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쳇. 그렇게 말하면 이건 개헌 정도가 아니라 거의 유신 수준이다. 내가 독신주의를 포기할 거라고는 나도 거의 생각지 않았으니까. 이제 정식으로 선포한다. 나 000은 1990년 0월 0일 이후로 독신주의가 아님을 선포하는 바이다. 됐냐?.”
“이 배신자에 독재자 같으니!”
나는 그렇게 독신주의 내 동지를 아주 간단한 선포식 하나로 잃었다. 강제적인 함포 외교는 아니었어도 친구로 여겨 남자란 존재들에 대해 걸었던 혐오라는 단단한 쇄국의 빗장을 풀었던 나는 녀석의 소리 소문 없는 유신 단행과 현대 국가로 발돋움하는 개헌의 성공으로 우방국이 아닌 주권국 침탈을 집요히 설득당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