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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야기 28-카드

카드

 <카드>

녀석은 성탄절이면 모두에게 카드를 잊지 않았다. 미술을 잘했던 녀석은 해마다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직접 만든 카드를 우리 모두에게 주었다. 지금 봐도 정말 예쁜 카드 같다. 물론 난필이었던 녀석의 친필 성구 삽입만 뺀다면...


다음은 카드의 전문들이다.


OO. 

지난 1년 동안 수고 많았다. 앞으로 남은 3학년 좀 더 보람 있게 보내고

고등학교 가서도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생활해라.

지난 1년 동안은 여러 가지로 즐거웠다. 

88학년도 3-2를 잊지 말고 항상 건강하거라.

언제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길 빌며.

-Adios OO


To OO자매

먼저 주님의 평강이 자매님과 자매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매님을 통해 제게 그의 평강을 보내주시곤 한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실로 자매님을 통한 주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일까 생각할 때, 약간 암담한 생각이 듭니다. 물론 주님께선 다른 길을 주셨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저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아마도, 아직까지 가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자매님이야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자매님은 제게 참으로 아름다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너무 추한 것을 알려드린 것 같아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래도 허구한 날, 나의 헛소리 같은 고민과 계획 같은 것을 진지하게 들어주신 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매님, 이제 1990년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활동할, 주님 맞을 채비를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잘 해오셨지만 앞으로 새해에도 주님만을 위하여

충심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십시오. 그리고 가끔 생각나는 대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제가 하는 일도 잘 좀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억지로는 말고 진심으로) 

새해에는 제발 몸 좀 건강하십시오.

또한 계속 신실한 주님의 딸로 익어 가십시오.

복된 성탄과 기쁜 새해가 되시길 바라며...

OO


녀석과 나 외에 나의 절친과 녀석의 절친 이렇게 넷은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자주, 오래 함께 이야기했다. 우리 넷은 생일을 좀 특별히 축하해 주려는 노력들을 했다. 한여름에 스케이트장을 간다던가 감자를 좋아하는 내 절친을 위해 감자모양 장식품을 선물하거나 감자 요리를 해 준다던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날 위해 다 같이 뮤지컬을 감상한다던가 때론 선물을 찾는 과정을 함께 시나리오처럼 카드에 써서 주기도 했다. 내 생일에 녀석은 그 모든 활동들을 함께 한 후 따로 나에게 글을 주었다. 


고2 생일 때

[OO 자매님께]

먼저 생일을 축하합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편지지만 나의 축하를 기쁘게 받기를 바랍니다. 공부로 바쁜 와중에 생일을 즐겁게나 보냈는지? 언제나 믿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한 기쁨과 만족으로 자매님의 이 세상 순례의 17년째의 날을 채워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요즘 보기엔 자매님이 더욱더 하나님의 주시는 기쁨 안에 거하며 즐겁게 사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그리스도 안이 형제로서 역시 즐거워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team이 화목하게 되고, 이렇듯 아름다워진 것이 자매님의 기도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고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권면해 주고 특히 제게 큰 위안이 되어 주신 것에 감사하고 그 상이 하늘나라에 쌓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매님, 현 상태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답니다. 좀 더 예수님처럼 살고 사도들의 믿음, 또한 많은 순례자들의 용기를 갖는 것을 열망하십시오. 그리고 이세상것들보다는 저 하늘나라의 것을 중히 여기고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공부도 열심히 하여 언제나 좋은 결실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제도 좀 더 수월해지고 이 세상 풍파를 견디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 그 배경은 우리 주님이 되셔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요사이 제가 너무 세상 쪽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일들은 세상이 나를 더 이상 공격 못하게 보호막을 치는 과정입니다. 조금 더 있으면 주님을 향해 죽도록 달릴 것입니다. 사도들처럼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버리진 못했고 아직도 그렇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온전한 크리스천으로 주님께 갈 것이라 믿습니다. 나도 성 프란체스코처럼, 죠지 뮬러처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자매님,

생각나실 때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선 자매님께도 아름다운 계획으로 주님 보시기 합당하게 이루실 줄 믿습니다. 앞장에서 조금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이해해 주십시오. 그 정도로 저의 지금 상태는 혼란하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형제, 자매님들과의 교제 중에,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 중에 모든 것이 차분해지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충고 하나만 하고 줄일까 합니다. 자매님은 다 좋은데 매사에 약간씩 미지근하게 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성격이라는 것은 잘 압니다. 그리고 그런 성격이 결코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힘 빠지게 하는 그런 것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 자주 그러지는 않지만 가끔 있는 그런 일들은 저 같은 성격의 소유자에겐 불안증의 원인이 된답니다. (이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 미지근한 자세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멋지고 아름다운 크리스천 아가씨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 나온 많은,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처럼, 우리가 잘 아는 많은 믿음의 여인들처럼, 아니 가능하면 그분들을 능가하는 삶을 사십시오. 가정에선 착한 딸로, 말 잘 듣는 동생으로 맡은 바 역할을 다하시고 학교에선 안 믿는 자들에게 주님의 증인이 되고 교회와 믿는 자들 중에선 한 지체로서 열심히 일하십시오. 하늘나라에서 이로 인한 자매님의 상이 크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주님의 평안이 자매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 OOO으로부터


열아홉 번째 생일에-자작 시와 애송 시 등으로 엮은 선물과 함께. 


[생일에 부쳐]

‘사막의 시’를 또 한 번 쓰려고 했으나 국영수에 찌든 머리(아니 수학은 제외)는 

사막이고 나발이고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그러기에,

그냥 씁니다. 


이 한 권의 책에

비록 엉터리이나 나의 노래를 담아 그대에게

처음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나 나의 18년에 얽힌 노래들은

내 속에 너무 엉겨 붙어 떼어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총페이지의 반을 간신히 넘긴 채

심판대에 내 노래를 올리리라 각오했습니다. 


분명 형제는 아니고 자매인데

자매로만 남겨두긴 싫고 친구라기엔

단어가 좀 부족한 거 같고

연인이라 부르기엔 웃기지도 않는,


누군가 노래한 대로 하나의 눈짓 이라고나 할까.


그대가 내게 누구인지, 내가 그대에게 누구인지

시험이나 끝나면 정의해 봅시다. 


그대가 내게 누구인지, 무엇이었든지 간에

내 속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꽤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부정할 수도,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


가끔 옛 일(?)을 생각해 봅니다.

반장과 부반장으로 아웅다웅거리던 시절. 

친구 하자고 과감히 펜을 들었던 날.

집회에서 형제애를 느끼며 비(보통이 넘는)를 맞고 걷던 밤.

아직도 그대가 시달리는 증세를 풀려고 있는 농담, 없는 농담

지껄이던 날. 

서로의 추억을 꺼내 놓으며 이야기하던, 유난히 도서관에 사람이 많던 겨울날.

잠을 깨운답시고 머리카락을 뭉창 뽑던 OO 학원 새벽 반. 

학원을 돌아오며 둘 다 얼굴이 시퍼레져서 걷던 공포의 얼음밭.

버스에서 자빠질 때 팔을 안 잡고 팔의 극히 일부분을 잡아 (정확히 말하면 꼬집어) 

사람 황당하게 하던 그대. 


더 쓰라면 쓰겠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원할 때 다시 꺼내볼 수 있을 겁니다. 


어둡고 혼란한 시국에서,

지금도 어디선가 젖이 없어 죽어 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시대의 모순과 아픔을 느끼며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왔나 생각해 봅시다. 


이는 다 주님의 은혜요, 뜻입니다. 

이 땅에서 보릿고개를 없애시고,

자동차들로 도기가 꽉꽉 찰 정도로 하시고

세계 성경의 20%가량을 이 나라에서 생산하게 하신 뜻입니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더 안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전 주일날 도로 가에 앉아 이야기할 때

언급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해서 언급되겠지요.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그날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대화에서 너무 많은 것이 오간 것 같습니다. 

‘너무’라는 표현은 이상한데

하여간 그때 나는 어떤 무거운 것이 내게 덮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그만큼 무거운 것이 내게서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비주의자로 몰릴지도 모르지만 그때 우리 옆엔 누군가가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같이 들으시고 같이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언제나 그러셨는데 그때 처음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언제나 우리(우리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가 모일 때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저것 긁적여 봤습니다. 

이것들 말고도 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뜻이라면 그 이야기들을 그대에게 다 해줄 날이 오겠지요.


오늘은 이미 새벽 3시를 넘어선 시간이라 이만 펜을 멈추어야 합니다. 

다른 시는 몰라도 이 시만은 그대 만을 위해 씌어졌습니다. 

그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마음을 전하기 위해(잘 안 된 것 같지만).


이 펜은 이제 마지막 글자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갑니다. 

마지막 말에 나의 충심 된 축하를 담습니다. 

부디 풍족하게 받으시기를 빌며

“사랑하는 자매님, 생일 축하합니다.

건강하시고 주의 복이 그대 머리 위에 주님 오실 그날까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그리고 영원토록 임하시길 바랍니다.

Happy birthday to you!"

-하나의 눈짓 에게

다른 하나의 눈짓이

-199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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