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 요정이 오면 알려줘!
앨리와 마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나(마르)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조용-하니 정적이 찾아오면, 갑자기 세상에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혼자가 된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건 모두가 잠에 드는 밤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내가 가장 싫어했던 일은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잠에 드는 것이었다. 여기서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어린 앨리와 마르는 같은 방, 같은 이부자리 안에서 자곤 했다. 베개를 나란히 붙여 놓아두고, 나란히 눕는다. 앨리는 양팔과 발까지, 이불의 3면을 몸에 딱 맞게 싼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이불을 이렇게 덮는다.) 앨리가 야무지게 잘 준비를 마치면, 나는 그 이불 고치 속에 내 손 한쪽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꼬물꼬물 움직여, 앨리와 꼭 한 손을 마주 잡았다. 앨리가 따끈따끈한 태양의 손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잠 요정 신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나는 앨리에게 늘 진지한 얼굴로 당부했다.
"잠에 들 것 같으면, 손을 꼭 눌러서 나한테 알려줘야 해!"
앨리가 먼저 잠에 빠져 혼자가 되는 것이 무서웠던 내가 고안해 낸 나름의 방법이었다. 상황을 모르고 있다가 혼자 남는 것보다는, 대비할 수 있도록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 나에게는 실망스럽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잠요정 신호는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잠이 들 듯 몽롱한 상태의 사람이 어떻게 의식적으로 힘을 꽉 줘서 "아 선생님, 저는 이제 약 5분 뒤 렘수면 상태에 진입할 예정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안녕히 주무십시오."와 같은 느낌의 신호를 줄 수 있겠는가. 앨리가 그냥 잠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10중의 9였다.
간혹 앨리가 아주 깊은 잠에 빠지기 전에, 내가 손에 힘이 실시간으로 빠져가는 앨리를 눈치채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앨리의 손을 꼭 잡고 "언니 자? 잠 와? 지금 잘 거야?"라고 물었다. 앨리는 그럼 스르르 잠에 들다가 다시 내 손에 끌려 나온다. "으,, 아니. 아직-"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질질 끌면서 가수면 상태로 돌아온다. 그럼 나는 잠시간 안도하며, '내가 먼저 잠들어야 한다, 잠들어야 한다, 잠들어야 한다..'하고 눈을 꾹 감고 되뇌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것, '무의식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의식하는 것.. 딜레마에 빠져 눈이 더 또랑또랑해져 간다. 그렇게 결국 먼저 잠든 앨리 손을 꼭 부여잡고 눈을 또랑또랑, 끔뻑끔뻑, 끔-뻑, 스르르. 함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작은 안정 속에서 나도 잠 요정에게 몸을 맡긴다.
다행히 혼자 남겨지는 상황에 대한 나의 공포감은, 내가 조금 더 자라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때 싹 사라졌다. 그러면서 잠요정 신호도 사라졌지만, 지금도 한 번씩 앨리와 나는 손잡고 잠들던 때를 종종 이야기한다. 먼저 잠들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냥 자버린 앨리에 대한 배신감, 매일 배신하면서도 이번엔 꼭 약속 지키겠다던 앨리의 바람둥이 같은 다짐, 반복되는 배신에도 매일 밤 다시 손을 잡은 나에게 그래도 앨리가 주었던 안정감, 누군가의 잠 곁을 지키던 경험의 포근함. 그러면 우리는 방금 막 쪄낸 감자 같은 포슬포슬한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