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미키 유쏘파인♬
영화 <미키 17>을 보고 왔다. 함께 본 관객들 중 가장 많이 깔깔댔던 앨리와 마르는, 상영관을 나오고서도 미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이어갔다. 영화를 보는 과정과 이후 어느 순간에도 즐거운 영화였기 때문에, 그 감상을 소소하게 나눠보려 한다.
이 영화의 맛깔난 요인 중 하나는, 어떠한 인위적인 집중력도 필요 없이 영화의 시작과 함께 그 세계관에 스며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 책을 첫 장부터 열어보는 게 아니라, 아무렇게나 58p쯤 펼친 느낌이었다. 그런데 열어본 챕터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계속 읽게 되는 것이다. 그 앞의 이야기도, 뒤의 이야기도 한참 있을 것 같아 상상하게 되는 매력이 있달까. 또 메시지와 상황은 잔인하고 냉소적인데 비주얼과 유머는 침잠하지 않는 것, 과장과 유머로 관객을 웃기지만 씁쓸한 맛을 남기는 것, 연인과의 사랑을 너무 숭고하게도 피상적으로도 다루지 않는 점도 좋았다. 모든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단언하지 않으려는 애티튜드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부터 영화 <미키 17> 스포주의
다양한 매력을 가진 영화였지만, 그중에서도 앨리와 마르는 '미키' 개인의 내적 분투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속 복제인간인 미키는 조금씩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진 17번과 18번으로 분열되어, 다투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아니, 주로 다투기만 한다. 복제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에서 실수로 마주해 버린 17과 18은, 가장 먼저 서로를 죽여 이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둘 다 죽기 싫은 건 매한가지. 더 충동적이며 결단력 있는 18은 소심한 성격의 17에게 더 오래 산 네가 죽으라고 말한다. 17은 이렇게 답한다. 지금까지는 죽어도 다시 내가 복제되어 살아왔는데, 이번에 죽고 복제가 계속되면 내(17)가 정말 죽어 없어지고 네(18)가 이어지는 것 같아 무섭다고. 18도 생각에 잠긴다.
둘은 이렇게 같은 생각을 나누고 있지만, 그 상황을 겪으며 표출하는 감정은 또 다르다. 저녁 식사에 초대해 놓고 미키를 실험체 쥐처럼 소비한 지휘관에게 미키는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미키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앞의 미키를 향한 경멸을 숨기지 않다가, 총을 들고 지휘관을 쫓아 뛰쳐나간다.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일까? 전자의 미키에게는 정말 분노가 없을까, 후자의 미키는 오래된 체념과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던 걸까.
앨리는 이 영화가 모든 개인에게 건네는 위로가 있다고 보았다. 우리에게도 둘로 또는 그 이상으로 분열된 감정이 있지만, 그 모든 감정은 결국 한 인간의 것이다. 나약한 마음, 그 나약함을 향한 자기혐오, 이런 상황을 만든 구조와 상황에 대한 분노, 그럼에도 결국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역시 자신이라는 깨달음, 자기 연민의 반복. 이렇듯 각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열을, 두 명의 미키를 통해 분리해서 바라보는 경험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이상적으로 자기 분열은 결국 자기 화해를 낳는다. 물론 인생은 결말이 없기 때문에 자기 분열과 자기 화해는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의 미키가 살아남지만, 그 미키는 또 다른 미키로부터 받은 영향의 토대 위에 삶을 꾸려가는 것처럼. 이때 살아남은 미키가 더 우월해서 남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소심한 미키가 살아남은 것도 흥미로운 동시에 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어찌 되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부족한 '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마르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생을 꾸려가고 사랑을 이어가는 자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미키 17>은 마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에 대한 확신을, 앨리에게는 다양한 마음속에서 방황하는 개인에게는 위로를 재치 있게 전하는 영화였다. 우리의 감상평은 한마디로- ♬
Oh, Mickey. You're so fine. You're so fine you blow my mind. Hey, Mickey! Hey, Mickey!
- <Hey, Mickey> by. Toni Basil
p.s. 마르와 앨리도 꽤 높은 유사도의 백그라운드와 생각을 공유하는데, 그렇담 우리는 미키 1과 미키 8 정도
거리의 미키들이라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