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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Sep 22. 2024

진심이 어려운 아이1

강 윤-1(1/2)

 토요일 오전이었다. 윤은 알람 없이 깬 기분 좋은 여유를 즐겼다. 벽에 걸린 시계로 7시 20분쯤이라고 가늠했다. 눈을 감고 조금 더 휴식을 취하려는데 메시지 알림 소리가 났다. 인우였다. 눈살을 찌푸렸다. 평화를 방해하는 데에는 늘 선수였다.


 심호흡을 하고 시우의 방문 앞에 섰다. 언제부터 아들에게 이런 거리감을 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이혼이겠지. 눈을 완전히 감았다 떴다. 똑똑똑. 가볍게 노크를 했다.


“왜.”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윤은 긴장했다.


“들어가도 되나 해서.”


“응.”


 벌컥, 시우가 문을 열고 윤을 마주했다. 시우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고 윤은 시우의 책상 의자에 앉았다. 깔끔한 것은 저의 아빠를 닮은 것 같았다.


“식사시간 변경된 거면 연락으로 해도 되잖아.”


“그런 거 아니야...”


 윤이 한숨을 쉬었다. 이토록 가족 간의 대화가 어렵고 무거웠던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어 시우에게 건넸다. 시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학원. 다니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이건...”


 윤의 핸드폰 속에는 시우의 공연 날, 춤추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인우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윤에게 보낸 것이었다. 시우가 물끄러미 영상을 시청했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데. 나 진짜 잘 추는구나.”


“대답해, 춤 안 추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막무가내로 끊고 언급도 안 한 건 엄마였잖아.”


“등록 안 했는데 어떻게 학원 사람들이랑 공연을 해.”


 각자의 질문만, 각자의 답변만. 원활한 의사소통은 찾기 힘들었다.


“티오가 남았던 것뿐이야. 연락 와서 한 번만 해줬던 거고. 학원 공식 계정으로 영상 올린다고 했는데 그거 인가 봐.”


“... 안 출 수는 없어?”


“추든, 안 추든. 이제 상관없잖아. 아빠도 멀리 가버렸고, 그 아저씨랑 잘 지내고 있잖아. 아, 내가 방해물이라서? 조용히 고분고분, 아빠처럼 사라졌으면 해?”


“그만하자, 머리 아프네.”


 혼자만 그럴까 봐, 읊조리는 시우를 뒤로 윤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는 인우의 메시지. 잘됐어? 윤은 침대에 누워 한숨만 쉬었다.


 윤과 인우는 흔히들 말하는 소꿉친구였다. 최초의 기억은 서로였으며 서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윤은 중학생 때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인우는 그런 윤을 따라 고등학생 때 춤을 시작했다. 윤의 꿈은 작은 학원을 세워 수강생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인우는 댄서였다. 공부와 춤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희망이자 힘이고 위로였으므로 괜찮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석식시간이 되어 인우는 윤의 반에 찾아갔다. 반은 따뜻하게 보일러가 켜져 있었고 모두 급식실에 가서 아무도 없었다. 윤은 혼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어제 배틀 연습 열심히 하더니만. 인우는 윤을 깨울 목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제쳐두고 교과서에 파묻혀 눌린 뺨을 조심히 만지작거렸다. 마음속 이름 없는 가려움의 충돌이었다. 그녀의 뺨에 자신의 입술을 짧게 갖다 대었다. 순간 귀가 끝까지 빨개진 인우는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윤의 귀도 달아올랐다는 것을.


 윤이 남자친구 주현을 인우에게 소개해준 것은 그 후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윤이 주현에게 먼저 마음을 고백했다고, 석식 시간에 자고 있을 때 몰래 주현이 자신에게 입 맞추었다고 인우에게 고했다. 인우는 덤덤했다. 오래가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윤은 그날부터 인우를 쌀쌀맞게 대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둘은 자주 마주치지 못했다. 사실 인우가 피했다. 복도에서 봐도 눈을 피했고 학원 시간까지 바꿔버렸다. 그러던 1월, 윤이 울면서 인우에게 전화를 걸었고 인우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윤의 집이었다.


“나 이제 춤 못 춰.”


 윤이 유전적으로 허리가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춤을 출 때마다 아파한다는 것도. 그저께 버티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갔다고 했다. 여기서 더 이상 춤을 추면 걷지 못할 수도 있어요. 윤의 미래는 하루아침에 망가졌다. 그 순간, 우는 윤을 끌어안으면서 인우는 생각했다. 나도 얼마 안 가 춤을 그만두겠구나.

 개학 전까지 주현은 매일 윤을 찾아가 위로해 주었다. 그걸 알았던 인우는 더 이상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3월, 둘은 같은 반이 되었다. 주현은 바로 옆 교실이었다.


 반장이었던 윤은 유인물을 제출하기 위해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그 넓은 교무실에서 인우와 담임선생님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날 저녁, 인우의 집의 초인종을 끊임없이 눌렀다. 문을 열고 인우가 나타났다.


“너 고등학교 3학년이야. 입시 준비하고 있잖아. 그런데 그만둔다고?”


 인우가 실소를 터뜨렸다.


“꿈이 바뀌었으니까.”


“3년 내내 댄서였잖아. 정말 이루고 싶어 했잖아. 간절히... 원했잖아.”


 윤은 인우의 소매를 잡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인우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춤을 추는 네가 정말 행복해 보여서, 그게 너무 예뻐서 같이 공유하면서 네 옆에 있길 원했던 것 같아.”


 인우가 윤의 고개를 부드럽게 두 손으로 잡아 자신을 보게끔 올렸다.


“의사가 되어서 꼭 허리 고쳐줄게. 너 춤출 수 있을 때, 나랑 다시 춰주라.”


 윤은 공부도 열심히 병행했던 터라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에 붙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윤만을 바라보며 춤에 매달렸던 인우는 졸업식에 차여하지도 않고 수도원의 기숙 학원에 들어갔다. 전화번호도 메일주소고, sns 계정도 다 바꾸거나 삭제했기에 둘의 연락은 끊겼다.


 윤의 결혼소식이 들린 던 인우가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신랑이 주현인 것을 보고서는 안심했다. 윤을 오래 봐 온 만큼 그녀에게 좋은 배필이 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결혼식에는 가야 할 것 같았다. 청첩장은 모친에게서 받았다. 멀리서 주현이 화장실에 간 것을 확인하고 신부 대기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본 윤은 하필 가장 아름다웠다. 그래야 하는 날이었으니까. 빛이 났다. 슬펐다. 그래, 맞아. 내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내 첫사랑.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 올 줄 알았어.”


 인우는 말없이 웃었다.


“네 입술이 가장 따뜻했어. 아무리 현이랑 입맞춤을 해도, 그때 네가 교실에서 몰래 해주었던 것만큼 따뜻하지는 않더라.”


“알고... 있었어?”


“현이한테 부탁했었어, 네가 그러면 밝힐 줄 알았어. 내 뺨에 입 맞추었던 것은 이주현이 아니라 나라고. 근데... 그게 이렇게 됐네. 현이는 다 아는 데도 나 좋다고 해줬어.”


 인우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이 좋은 사람이니까. 행복할 거야.”


 인우는 과거의 진실을 다 알게 되었다고 해서 저의 마음을 표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방해가 되지 않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 번 동창회를 할 때, 시우라는 아이를 낳았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다 몇 년 뒤,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고 윤이 인우에게 연락했다.


 주현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윤과의 세월은 사랑이 아닌 단순한 정이었다는 듯이. 빌었다고 했다. 시우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계속 만나고 싶다고. 윤이 울었다. 춤을 못 추게 되었다고 엉엉 울던 그 모습으로. 인우의 가슴이 동요했다. 떨렸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울음은 불가항력이었다.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인우가 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결혼 후에도 내 생각한 적 있어?”


 윤이 고개를 끄덕여다. 인우가 그녀에게 깊게 입 맞추어다. 윤은 놀라지만 이내 두 눈을 감아다. 몇 분 뒤 둘의 고개가 떨어졌다. 침대에 걸터앉은 인우가 물었다.


“어땠어?”

“따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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