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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Sep 24. 2023

나에게는 특별한 고향이 없다


나에게는 특별한 고향이 없다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특별한 고향이 없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흥남 철수작전 마지막 배를 타고 나오신 실향민이시고, 

나는 초등학교만 5군데를 다녔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내 인생 첫 기억은 부산에서 시작된다.

부산에서 4살 때부터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다녔는데 유치원 시절부터 조금씩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는 아버지가 서울로 오시면서 서울에서 다녔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에는 아버지가 다시 대전으로 가시면서 우리 가족도 대전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3학년에는 다시 아버지가 서울로 오시면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1학년에서 3학년 사이에만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다닌 것이다.          



4학년에는 서울에서 이긴 하지만 다시 이사를 가면서 초등학교 동안 5번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아버지가 군인이셨냐고 물어본다.

군인이 아니셨고, 대기업이셨는데 젊은 시절 지방 영업소로 많이 다니시면서 가족이 함께 다녔던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친구다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지금도 이때 매주 함께 ‘오뚝이 클럽’이란 이름으로 함께 놀던 친구들과는 연락을 하며 가끔 만난다.          



고향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장소나 아직도 함께 정을 나눌 사람이 있는 곳을 의미할 것이다.

나에게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던 동네와 사람들을 고향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또 이사를 가서 대학 졸업 때까지 10년을 살았던 여의도가 고향이라는 느끼도 없다.

평촌으로 이사를 가서 결혼도 하고 신혼 때에 8년 정도를 살았고, 대전에 가서도 5년 정도를 살았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해외와 국내를 오가면서 살았으니 여기저기에 추억은 많아도 어디를 고향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명절만 되면 고향을 가기 위해 길에서 많은 고생을 하는 이들을 보면 고향이 없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지금은 양가 부모님이 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셔서 명절에 하루씩 다녀오면 된다.

아들이 사는 인도네시아는 얼마 전에 잠시 다녀왔으니 추석에 영상 통화나 하면 아들네가 올 일도 없다.

긴 추석 연휴에 특별히 여행 계획도 잡지 않았으니 비교적 여유로운 연휴가 될 듯하다.          



나에게 특별히 고향이 없다는 의미는 다양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았음을 의미한다.

그 다양함은 때로는 롤러코스터와 같아서 나는 흥미를 위해 놀이동산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나는 그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만의 시각과 통찰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이었다고 믿는다.



아버지와 같이 6.5 전쟁 때 남한으로 오신 분부터 3만5천이 넘는 탈북민이 그런 분들이다.

또한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대부분 자신의 고향이 가지 못하고 이 땅에서 명절을 지내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도 이번 추석이 아쉬움과 그리움만 가득한 추석은 아니기를 바란다.    


      

나에게는 명절에 생각나는 특별한 고향이 없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는 더 풍성하고 다양한 추억들이 넘친다.

고향 한 곳에 가득한 추억은 없지만 서울, 대전, 부산을 넘어 라오스와 아랍에미레이트에까지 살아 본 경험의 풍성함을 추억하는 추석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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